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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이 목표라 믿었던 착각

산을 오르며 배운 것들

by 서나송


산을 오를 때, 정상을 바라보며 걷지 않는다.
초입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정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된다.
내 시야는 발끝에 머문다. 미끄러운 낙엽 위에서 균형을 잃지 않게, 돌부리에 발이 걸리지 않게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내딛는다. 그렇게 걷다 보면 문득 옆도 보고, 위를 올려다보고, 지나온 길도 돌아본다.


앞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저 앞사람이 내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뒤를 돌아보면, 내가 지나온 길을 힘겹게 따라오는 이가 있다.
낯선 사람이지만 속으로 격려한다.
“조금만 더 가면 쉴 수 있는 의자가 있어요.”
산길 위에서 나누는 이런 무언의 응원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동행이 아닐까 싶다.


드디어 정상에 오른다.
땀에 젖은 옷은 한순간에 식고, 바람은 그 땀을 보상이라도 하듯 시원하게 스쳐간다. 정상에서 느끼는 쾌감은 짧다. 몇 장의 인증샷을 남기고는 바로 허기진 배를 채우러 길을 떠난다.
“이 맛에 산을 오르지!”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상이 목표라고 믿었던 건 착각이었다.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
내게 더 소중했던 건 땀을 닦으며 잠시 쉬어가던 순간,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던 자연이 눈길을 사로잡던 찰나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간 그 길이었다.
정상은 목적지였지만, 내가 얻은 것은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모든 순간들이었다.


만약 목표가 정상을 밟는 일에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정상에 오르는 순간 허무함이 밀려왔을지도 모른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그 허무함을 피할 여유를 준다.
내리막길은 더 조심스럽다. 올라갈 때 쏟았던 힘은 오히려 하산에서 발목을 잡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한 걸음씩 내려가며 깨닫는다.
정상에 머무는 건 순간이고, 내려가는 길마저도 산행의 일부라는 것을.


어쩌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는 끊임없이 목표를 세우고,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그러나 정상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지나가는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언젠가 깨닫게 된다.
목표는 정상을 정해주지만, 삶의 진짜 가치는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길 위에 펼쳐져 있다.
그리고 내려와 비로소 온탕에 몸을 담그며 그 길을 추억하는 순간, 삶이 내게 가르쳐준 풍요를 실감한다.


그 길 끝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정상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한 이야기들이다.

정상을 향한 발걸음 속에,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서나송



하산해서 본 하트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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