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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옷이 없다

아니, 입고 싶은 옷이 없다

by 서나송
뭔가를 더 가질수록
삶은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버릴수록 행복하다는 정리의 마법이다.

_조슈아 베커 <작은 삶을 권하다> 중에서




옷장의 역설


옷장을 열면 옷이 빼곡히 걸려 있다. 그런데 옷이 없다.

입을 게 없어서 늘 입던 옷을 꺼낸다.

아무래도 익숙하고, 무난해서 그런 걸까?

어떤 때는 일주일에 두 벌이면 충분할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다.

옷이 그렇게 많은데, 내 눈에는 왜 옷이 보이지 않을까?


미리 쟁여놓는 소비


‘안 입는 옷 싹 버리고 정리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막상 버리려 하면 아깝다.

비싸게 주고 산 옷이라서, 언젠가 다시 입을 것 같아서,

괜히 버렸다가 나중에 필요할까 봐 망설이다가 결국 그대로 둔다.

그리고는 인터넷 쇼핑몰을 뒤적이며 장바구니에 새 옷을 담아 놓는다.

지금도 입을 게 없다면서.


인간은 참 신기하다.

냉장고를 열고도 먹을 게 없다고 투덜대는 것처럼,

옷장 속 가득한 옷들을 보면서도 입을 게 없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입을 옷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 내 기분에 딱 맞는 옷이 없는 거다.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이 없어서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여닫는 것처럼.

배가 고프지 않으면 진수성찬도 큰 의미가 없고,

배가 고프면 가방 속 사탕 하나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갑다.

결국 중요한 건, 물건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원하는 게 무엇이냐의 문제다.


옷장 속 많은 옷들을 보면서도 입을 게 없다고 생각하면 필요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착각 속에 한 소비는 더더욱 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정말 그 순간 일뿐. '난 또 뭘 입어야 하나…'고민하고 있겠지.


나를 아는 소비


한 번은 아이들과 함께 안 입는 옷, 쓰지 않는 장난감을 모아 기부한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나눔을 가르쳐 주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기부한 옷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없어진 줄도 몰랐던 것들을 붙잡고 있었던 거다.


소비도 그렇다.

‘입을 것 같아서’, ‘있어야 할 것 같아서’라는 이유로 사들이지만, 결국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만 남는다. 그렇게 쌓인 옷들은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옷장 속 많은 옷을 보면서도 입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착각이 시작된다. 필요하다는 착각 속에서 한 소비는 더더욱 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뭘 입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나를 위한 옷장


옷이 없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나에게 어울리는 색은 무엇인지,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는 것이 먼저다. 그 경험에 소비를 하면, 옷장을 열 때마다 불필요한 것과 필요한 것이 훨씬 더 명확해질 것이다.

그리고 입지 않는 옷은 과감히 버리자.

그것이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될 테니까.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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