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안돼!!
피아노 앞에 앉아있던 아이가 손을 홱 내려놓더니 휙 돌아 앉았다. 짜증이 잔뜩 묻은 얼굴.
"했는데도 안돼! 왜 안되는 거야?"
눈썹까지 치켜올리며 나를 봤다. 마치 내게 책임을 묻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숨을 쉬고 싶었지만 꾹 참고 조용히 아이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20분을 연습했을 뿐이라는 건, 5일 동안 외가에서 놀기만 했다는 건, 지금 이 순간 아이의 머릿속에 없다. 없다기보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해도 해도? 그게 무슨 말이야?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뭘 했다는 건지, 정말로 ‘했는지’, 그걸 모르겠다는 투로. 아이의 마음을 한번 더 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아니!! 지금 몇 번이나 했는데 왜 안되냐고! 손가락도 꼬이고, 박자도 이상해. 천천히 해도 안돼."
고개를 푹 숙인 채 투덜댔다. 내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한편으론 ‘이제 20분 했을 뿐인데 뭘 기대하는 거야’라는 어이없음, 또 한편으론 ‘그래, 네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공감. 하지만 현실을 알려주는 게 내 역할이겠지.
"00야~ 5일을 못 쳤잖아. 노느라고. 그럼 열흘을 연습해야 원래 상태로 돌아간대. 안 되는 게 당연하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마음이 편하지. 그리고 하면 돼. 그냥 하면 돼."
아이는 못마땅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더니, 다시 피아노를 향해 바로 앉았다. 나는 피식 웃었다. 고작 20분을 가지고 ‘해도 해도’라니. 어이없다가도, 어쩌면 나도 저런 적이 있었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얼만큼'이라는 단위는 이렇게 상대적이다. 나에겐 터무니없는 시간일지 몰라도, 아이에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었던 것. 나와 너의 주관적 비교를 떠나, 같은 사람이라도 처한 조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그 ‘적당함’, 혹은 ‘최선’은 너무 다르다.
그렇게 말해놓고도 아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묘했다.
나는 아이보다 많이 살아왔고, 더 많은 경험을 했지만, 나 역시 멈춰 서서 ‘해도 해도 안돼’라며 주저앉았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가만 보니 지금도 그렇게 외칠 때가 수두룩하다.
해도 해도 안돼!
왜 해도 해도 안들어줘요!
얼마나 해야 하는데!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참았다고 생각했고, 충분히 기도했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그랬을까? 내게는 최선이었지만, 더 인내한 사람의 눈에는 나는 어쩌면 겨우 20분 연습하고 ‘해도 해도’라고 말하는 아이와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충분하다고 느껴도, 실제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아이는 20분을 했고, 나는 수십년을 했다. 나는 열번을 했고, 누군가는 천번을 했다. 그 차이에서 오는 상대적 무게감. 그러니 '해도 해도'라는 말은 결국, 내가 정한 기준 안에서만 머문다.
아이의 손가락이 다시 건반 위에 올랐다. 조심스러운 터치. 아주 천천히, 한 박자 한 박자 음을 집어 나갔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습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해도 해도’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나는 정말
해도 해도 안 되는 상황까지 가봤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