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나부랭이
남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박사 나부랭이.”
나는 한 길만 걸어왔다. 몸을 쓰는 전공, 소위 예술과 체육은 프로가 되기 위해 한 우물만 파야 한다. 넓게 펼쳐진 길이 아니라 깊고도 좁은 길. 그 길 끝에서 ‘박사’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목표라기보다, 부족함에 이끌려 계속 공부하다 보니 닿은 곳이었다.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어렴풋이 알았지만, 스스로도 그 무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가족과 주변 지인들에게는 화려한 타이틀을 안고 금의환향한 셈이었다. 나름 부모님의 어깨를 으쓱하게 해 드리고, 나도 그 타이틀로 먹고살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송박! 송박!’ 부르면 왜 이리 부끄러운지. 겸손을 떨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난 나의 타이틀이 영 부담스러워 숨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장난스럽게 부르는 주변의 호칭이 어색했을 뿐인데, 점차 그 단어가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 이름이 내 성과와 직결되는 것 같았고, 내가 이룬 결과나 위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마다 한없이 작아졌다.
교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에 보일 만한 뚜렷한 성과가 없어서일까? 박사라는 이름 뒤에 따라오는 무거운 잣대들 속에서, 그 타이틀은 든든한 자리가 아니라 끝없는 심판대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더 나은 성과’를 요구받는 기분이랄까. 나는 그저 강사였고, 여러 연주자 중 한 명일 뿐이었으며, 지금은 가정에서 엄마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평범한 사람이니까. 내 자리에서 충분히 애쓰고 있었지만, 학위가 있는 이상, 내 현재 모습이 누군가에게 ‘충분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박사를 따면 뭐 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기대 앞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내가 걸어온 길의 의미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게 과연 겸손이었을까? 아니면, 그렇게 죽어라 공부해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어놓고 고작 한다는 게 집에서 애 키우고, 밥하고, 살림하는 게 대부분이 되어가는 것만 같아서 창피해서 그랬을까. 난 남 앞에서마저 내 학위를 하대하기 시작했다. ‘박사 나부랭이.’ 그렇게라도 그 무게를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내 주변에 박사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그 안에서 내게 ‘박사’는 그저 ‘학위’로 여겨졌다. 자기 방어로 시작된 겸손은 안타깝게도 점점 귀하디 귀한 과정조차 무시하게 만들었다. ‘박사 나부랭이’는 결국 내가 나 자신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만든 표현이었던 것. 하지만 그렇게 부르며 웃고 넘길수록, 오히려 그 이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 타이틀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 것이다.
끊임없이 주변과 비교했다. 나보다 앞서고 있는 다른 사람들, 가정을 이루며 여전히 음악인으로서 내가 바라고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견주며 그들 사이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작게 만들었다. 너무나 값진 나의 노력과 시간의 흔적을 스스로 깎아내리며, 그 이름을 내 안에서 점점 가벼운 것으로 치부했던 것이다.
결코 쉽게 걸어온 길이 아니었다. 피와 땀이 스며든 시간들. 누구나 걷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더 깊이 공부했고, 더 알고 싶어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수없이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던 날들 속에서 나만의 빛나는 조각들을 하나씩 얻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모든 시간들이 내 삶을 받쳐주는 단단한 토대가 되어 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테니까.
학위는 단순한 타이틀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무수한 밤과 새벽, 좌절과 희망이 뒤섞여 있다. 매일 악보를 펼치고 들여다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를 헤쳐 나가는 듯한 날들이었다. 때로는 지독히도 외로운 연습실에서 한 소절 한 소절의 프레이징을 붙잡고 고민했고, 때로는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져 손을 멈추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러고 있지?'라는 질문 앞에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최면을 걸었다.
"결코 헛되지 않을 거야."
작은 성취에 기뻐했고, 넘어져도 씩씩하게 일어섰던 나. 과정 하나하나가 이야기였고, 매일의 고단함이 지금 내 삶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었다는 걸 왜 깨닫지 못했을까. 한때는 학위라는 이름이 무겁게 짓누르는 짐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노력이 자부심으로 다가온다. 그 덕분에 새로운 길을 두려움 없이 걸어갈 용기가 생긴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시간을 가볍게 부르며 나를 깎아내리지 않으려 한다. 그 자체로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결코 부끄러울 것이 아닌 자산임을 알기에 감사와 함께 그 이름을 껴안고 나아가려 한다. ‘박사 나부랭이’가 아니라,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낸 나 자신으로서.
건반 밖 엄마,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