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거지인가
영상 하나가 알고리즘에 걸렸다.
출석으로 인정되는 체험학습을 내고 해외여행을 다녀온 아이 엄마와, 성실히 학교에 다니는 아이 엄마가 엘리베이터에서 이야기 나누는 장면.
화면 아래 자막처럼 깔린 신조어 하나.
웃기지도 않은 단어.
정말 요즘 세상엔 말 같지도 않은 말이 잘도 돌아다닌다 싶었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댓글은 쓴웃음을 짓게 했다.
“비행기 값 싸서 평일에 학교 빠지고 여행가는 아이가 거지 아닌가요?”
"개근하면서 빨간 날 비싼 돈 주고 여행 다니는 게 진짜에요."
“동남아는 돈 없어 가는 거고, 유럽 정도는 다녀와야지요.”
진심인가 싶었다.
문해력이 떨어지는 걸까, 아니면 정말 세상을 그렇게 보고, 아이를 그렇게 키우는 걸까.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런 말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는 거다.
이제는 ‘학교에 매일 나오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된 시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너무 열심히 사는’ 일로 보이고,
그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이 마치 가난의 증표처럼 소비된다.
'개근 거지’라는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그 안엔 웃자고 던졌지만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시선의 폭력이 숨어 있다.
마치 개근은 힘들게 일만 하고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사람들의 특징이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만이 삶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여유 있는 인간’인 양 말이다.
라떼는 말이다…라고 말하면 꼰대 같지만, 그 시절엔 ‘개근’이 자랑이었다.
건강해서, 아프지 않아서, 매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는 증거였다.
성실함은 어떤 덕목보다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지금은 ‘빠지는 게 유연함’, ‘결석이 곧 여유’,
심지어 ‘학교에 매일 나오는 애는 불쌍하다’는 식의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소비된다.
사실실 개근의 의미는 ‘성실함’이고, 여행의 의미는 ‘경험’이다.
각자의 삶에서 귀하게 다뤄져야 할 가치는 애초에 비교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한 줄에 세워 놓고 줄을 세우는 순간,
누구는 가진 자, 누구는 못 가진 자가 되고
그 단순한 농담이 아이들의 자존감에 금을 낸다.
문제는 그런 왜곡된 프레임을 어른들이 만든다는 거다.
아이들은 그저 그 안에서 자라고 배울 뿐인데,
우리는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대신,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를 더 자주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개근 거지'라는 말속엔
왜곡된 가치 판단,
삐뚤어진 비교,
어른들의 허영심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결국 아이들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여행을 다녀오지 못해 주눅 들고,
어떤 아이는 교실에 남은 자신의 시간을 의심하게 된다.
'성실함은 자랑이 아니야. 여행 못 간 건 네가 덜 가진 탓이야.'
그리고 비교한다. 누군가의 여행을. 자신의 일상을.
그 시간 동안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냈니?
아이들에게 남겨야 할 질문은,
'어디에 다녀왔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그 하루를 보냈느냐’이지 않을까?
아이에게 학교는 여전히 삶의 중심이어야 한다.
성실히 자리를 지키는 일이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진 가치가 되어선 안 된다.
체험 학습도, 여행도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소비되며 자랑이 되고,
누군가를 배제하고 위축시키는 도구가 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배움도, 여유도 아니다.
나는 아이에게 ‘태도의 개근’을 가르치고 싶다.
누구보다 충실히, 자기 삶의 자리에 있었던 너는 충분히 멋졌다고 말해주고 싶다.
네가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내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개근이 거지가 되는 세상,
웃기지도 않은 말 앞에서 나는 이렇게 되묻는다.
우리는 도대체 아이들에게,
어떤 기준을 물려주고 있는 걸까?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