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미안함 사이
저녁밥을 먹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친정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은 먹었니? 애들은?”
늘 그렇듯 별것 아닌 안부로 시작되던 대화.
그렇게 따뜻한 일상이 이어지던 중,
엄마는 조심스럽지만 간절함을 담아 말을 꺼냈다.
“00 알지? 거기 딸이 병원에 갔는데… 뇌에 종양이 생겼다네... 우리 온유랑 같은 나이인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본 적은 없지만, 눈앞에 있는 내 딸을 보며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믿기지 않았다.
아이의 뇌에? 이렇게 작은, 예쁜 아이의 머릿속에?
엄마는 부탁했다.
“기도 좀 해줘.. 새벽기도 가니까, 온유가 기도해 주면 나을 거 같아..."
"기도할게.. 딱해라.. 어쩌다 아이가 그렇게 됐어... 너무 딱하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사순절 새벽 기도 중이었고, 은혜가 충만해져 있어 기도하면 힘이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 아이가, 그 가족이 얼마나 두려울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드리는 잠자리 기도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좀 특별한 기도를 해야 할 것 같아. 진심으로...”
숨죽여 듣던 아이들은 자기와 또래인 친구가 큰 병에 걸렸다는 것, 아플 때 듣던 의사 선생님 입에서 살 수 있는 날의 기한이 정해졌다고 들은 것에 대해 적잖히 놀란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도 아이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느껴졌으니까.
누워있던 유가 고개를 돌리며 표정 없이 물었다.
“엄마, 그럼…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앞에
아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아니, 절대.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
너무 빠르고, 너무 강한 부정.
내 말이 끝나자, 유는 살짝 숨을 내쉬었다.
안도였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친구를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아이의 눈빛에 어른거렸다.
그 순간 내 마음 한 구석에서 아주 찝찝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올라왔다.
그 아이를 위해 두 손을 모으면서도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
너무나도 인간적인, 그래서 더 못나 보이는 마음.
그 마음이 나를 내 아이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게 했다.
기도는 했지만, 이런 이기적인 기도를 들어주실까.
내가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이 혹시 '나는 괜찮으니까'이기 때문은 아닐까.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가족 앞에 선다면 나는 감히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을 만큼 부족하고 미안한 기도.
진심이 있다고 해도, 그 무게를 온전히 알지 못한 채 건네는 말은 위로가 아니라 그저 동정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이런 진정한 기도가 필요했던 적이 없었던 게 아니었다. 결혼 후, 자연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의사의 선언, 부정하고 싶은 말을 들었을 때. 청천벽력이라는 말이 그렇게 정확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내게도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위로를 건넸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요즘 시험관 시술해서 쌍둥이 낳는 사람 많더라.”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좀 힘들어도 시간 지나면 애 낳아 잘 키우고 살더라고.”
그 모든 말들이, 오히려 내 마음에서 튕겨 나갔다.
진심이 없지 않았을 텐데, 마음에 닿지 않았던 위로들.
그들은 이미 가졌으니까. 그런 일을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모를 거라는 부러움과 낙심이 마음에 가득했다. 당사자에겐 너무 멀고, 그저 가볍기만 한 말들이었다. 섣부른 진심도 때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익명의 공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난임 카페에서 만난 어떤 이의 글.
“오늘도 병원 다녀왔는데, 이번엔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 한 줄이 위로였고, 눈물을 쏟게 했다.
같은 처지의 모를 수 없는 간절함.
응원의 댓글이 이어졌고, 그 댓글에 내가 격려를 받았다. 과부사정은 과부가 안다는 옛 말이 딱 맞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손 한번 잡아줄 때 가장 큰 위로가 된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날 밤,
유가 잠든 후, 나는 다시 한번 두 손을 모았다.
나보다 깨끗한 아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며,
내 솔직한 간절함이 꼭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기도 속에는,
아직 자격 없는 내 마음도 함께 담겨 있었다.
두려움과 미안함,
그리고 감히 말 대신 꺼내는 기도로 전해지는 진실된 마음 하나.
위로란,
그 자리에 서 본 사람만이
진심으로 건넬 수 있는 마음 아닐까.
고통을 함께 나누는 자로써 내게 주어진 자격,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있다면
온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뿐이다.
말 대신, 기도.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