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를 벗어난 나에게
탄력 있는 몸매를 갖고 싶은데,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싶은데,
체력을 길러 국력이 되게 하고 싶은데,
좀 더디게 늙고 싶은데,
버킷리스트에 바디 프로필을 찍고 싶은데,
어떤 옷을 걸쳐도 맵시 나고 싶은데,
아이들에게 본이 되고 싶은데…
싶은데, 싶은데, 싶어도
그 모든 바람이 나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운동하기 싫은 열 가지 이유를 대라고 하면 댈 수 있었다.
새벽형 인간인 내가 게으르다고 하면 억울하고,
걷는 건 좋아도 달리는 건 싫고,
산책은 좋아도 땀나는 건 싫고,
건강한 몸은 그냥 좋은 음식을 먹는 걸로 대체하고 싶은 나.
갖추어져야 할 모든 조건들, 그럴싸한 계획들,
사실은 핑계일지 모를 것들 앞에서
나는 늘 욕망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욕망을 능력 아래 둬야 인간은 자유롭다…
내가 늘 행복한 이유는 자기 능력 안에서 욕망을 꿈꾸기 때문이다.
_고명환 『고전이 답했다』중
운동했다고 하려면
적어도 30분 혹은 3킬로 이상은 뛰어야 할 것 같고,
인터벌을 하려면 최소한 10단계는 넘겨야 할 것 같은데,
나는 5에서 7만 올려도 숨이 턱 막혔다.
다시 4로 내려야 다음 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운동 후 러닝머신을 내려오는 여자의 다리는 탄탄했고,
그녀의 크롭 나시 위로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어떤 메이크업보다 반짝였다.
그런 모습이 운동하는 사람의 전형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한 번만 해보자. 아님 말고'라는 맘으로 시작만 했다.
달라붙지 않는 추리닝을 입고
눈곱도 못 뗀 얼굴에 볼캡을 눌러쓰고
허기진 몸을 러닝머신 위에 겨우 올렸다.
스타트를 누르면 발판이 회전하고,
멈춰 있으면 뒤로 나자빠지니 걸었다.
처음엔 5분만 걷자.
안 되면 2분이라도.
2분이 5분이 되고,
5분이 10분이 되었다.
1킬로를 걷다 보면
100미터쯤은 뛸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았고,
걷는 나에게 집중하니
남이 뭘 입었는지도, 얼마나 달리는 지도
슬그머니 눈에서 사라졌다.
등줄기 척추 사이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게 느껴질 때,
육체의 허기는
어느새 마음의 용기로 변해 있었다.
비교하기로 말하면
이건 운동이라고도 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소파에 앉아있던 나와
기계 위에 선 나를 비교해 보면
나는 거의 마라톤 선수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내가 나를 알아주는 이 조용한 시간이
다음을 있게 했고,
조금씩, 또다시 도전하게 했다.
운동만이 아니었다.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 To-do 리스트 앞에 나를 세우는 것도,
책 한 권을 정독하며 통찰력을 기르는 일도,
한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 날, 흰 노트를 펼치는 일도
모두 같은 방식이었다.
비교하지 않고,
욕망을 조절하고,
조금씩 나를 걸어가게 하는 것.
결국 삶이란
누가 더 멀리 뛰었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걸어가려 했는가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다
다시 일어나려는 마음이 더 귀하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안다.
가장 먼저 나를 방해하는 것도,
가장 자주 나를 깎아내리는 것도
늘 나 자신이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욕망보다 능력을 먼저 바라보고,
비교보다 태도를 먼저 기억하려 한다.
이걸 운동이라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
이걸 변화라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나에게 다가갔다면,
나는 이미 충분히 걷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소파를 벗어난 나에게
조용히 박수를 보낸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