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채집통 : 안희연 <줍는 순간>의 문장들

by 서나송


나는

무엇을 줍고 있는 사람일까.

무엇을 줍고 싶은 사람일까.

그리고 무엇을 주어야만 하는 사람일까.



나의 채집통은 지금 얼마나 채워져 있을까.

조심스럽게 상상해본다.

혹여 텅텅 비어 있다 해도

이제는 괜찮을 것만 같다.



책을 덮는 순간,

비어 있음도 하나의 시작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제부터는 정말 '나다운 것들'을,

내가 '진짜로 채우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천천히 담아가면 되는 거니까.



가득 채우지 않아도 된다.

눈에 띄지 않아도 된다.

조그맣고 평범해 보이는 그것이

어느 날, 나의 채집통 안에서 문장이 되고

사랑이 되고

위로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안희연 시인이 여행하며 주웠던

보석 같은 장면들과 통찰들이

조용히 마음의 결을 따라 흘러들었다.



시인스러운 언어로,

안희연다운 문장으로 채워진 《줍는 순간》.

많은 문장들이 생각을 머물게 하고

나의 마음도 마주하도록 이끌었다.

마치 오래된 엽서를 꺼내 읽는 것처럼

어떤 문장은 아렸고, 어떤 문장은 따뜻했다.



꼭 멀리 떠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이 삶의 형식임을 이해한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여행의 실감을 느낄 수 있지요.
중요한 건 내가 무엇에 시선을 던지고,
어디까지 깊어지며,
그것을 내 삶으로 어떻게 초대하는지에
달려 있는 건 아닐까요?

_ 안희연 시인




삶이 여행이라면,

나는 이미 지금 이 순간도 여행 중이다.

특별한 시간에만 빛나는 것들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특별함이

오래도록 내 삶을 비추리라 믿는다.



시인이 20년을 여행하며 채워 넣은 채집통을

조심스레 내게 열어 보이던 순간—

나는 그 안에서 반짝이는 문장들을

하나씩, 소중히 주워 담았다.




"사랑은 상대를 향해 한없이 기울어지는 마음이고
그 기울기가 크면 클수록 존재하는 위태로워 진다는 것을" p. 55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를 삼키는 것은 무엇일까. 아이는 책 속에서 답을 얻고자 했다. 그럴 때마다 책은 거짓말처럼 그 답을 일러주었다. 꼭 답이 아니더라도, 나도 또한 그것을 고민하고 있다며 동행해주었다." p. 91

"매사 헛발질만 하며 사는 것 같아도 그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음을 부정할 수 없듯이. 그걸 모르지 않기에 삶은 더욱 애틋하고, 한 걸음은 언제나 멀 것이다" p. 119

"하기야 멀리 간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얼마나 특별하겠는가. 목적이 있는 여행은 진짜 여행이 아닐지도 모른다. .. 무언가를 '보기'위한 여행이 아니라 '흐르기'위한 여행" p. 154

"행복의 조건은 부에 있지 않으며 오직 삶의 순간순간에 진실하게 임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 어느 누구에게도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은 없으며 누군가의 삶을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의 오만일 뿐이라는 것." p. 222

"우리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고, 각자의 무게가 있다." p. 222

"나는 모든 관계에 있어 진실한 사람이었던가." p. 228

"삶은 여행이라는 오랜 은유를 떠올려보면 배낭은 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쯤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러니 지치지 않고 더 오래, 더 멀리 걷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깨가 가벼울수록 좋을 것이다." p. 259



이제 나는,

조금 더 선명한 마음으로 묻는다.

나는 무엇을 줍고 싶은 사람일까.

그리고 오늘, 나는 어떤 것을 줍게 될까.


어쩌면 내가 채집하는 것은 문장이 아니라,

문장을 빌려 돌아보는 ‘나’일지도 모른다.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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