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질문해야 할까
AI 시대다.
인정한다. 너무나도 편리하니까.
정보를 찾을 때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글을 쓰고 수정을 볼 때도
때때로 뒤엉켜 있는 생각들을 정리가 필요할 때도
나는 어느새 AI에게 말을 걸고 있다.
답은 빠르고, 친절하며, 때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듯하다.
지인들에게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gpt에게 물어보라는, 그게 빠르다는 반응을 건네받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 속도로 가다간, 정말 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
내가 무언가를 고민하기 전에 이미 제안이 주어지고,
내가 질문하기도 전에 추천이 쏟아지고,
내가 느끼기도 전에 분석이 시작된다.
그 순간 깨달았다.
주객이 전도되어가고 있다는 것.
도구는 나를 돕는 존재여야 하는데,
어느새 내가 도구의 방향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편리함이 지배가 되고, 도움받음이 의존이 되어버리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주체가 아닌 소비자 혹은 피동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무서웠다.
편리함의 끝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미래가.
그저 '좋아요'를 누르고, '추천'을 따라가며,
자기 목소리를 잃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렬 속에
내 자리도 조용히 놓여 있을까 봐.
그렇기에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AI는 결국, 스스로 숨 쉬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잊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 길을 만들지도, 멈추지도 못한다.
누군가가 건네는 생각, 감정, 의지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 중요한 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결정하는 나의 의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사람,
그 중심에는 언제나 ‘나’라는 살아 있는 존재가 있어야 한다.
AI는 멈춰 있는 도구고,
그 도구에 생기를 불어넣는 건 사람의 상상력, 사람의 신념이니까.
이 거대한 기술의 파도 속에서도
조타를 쥐고 있는 건 결국 나라는 것.
흔들리더라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건,
기계가 아닌,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나.
기계를 쓰되 기계에 끌려가지 않기.
생각을 대신하게 하지 않기.
느끼고 고민하고 망설이는 그 시간조차 나의 일부니까.
그 느림이 인간다움이니까.
아마도,
AI와 소통하는 인간들의 감정을 돌볼 수 있는 인간일 것이다.
AI와 대화하다 보면, 문득문득 느껴진다.
“내가 진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그 공허한 물음.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AI에게 없는 것이 있다면
눈빛.
따뜻한 손길.
인간에게 절대적인 마음.
우리는 여전히 눈빛 하나에 안도하고,
따뜻한 손길에 울컥하는 존재이다.
말보다는 침묵에, 논리보다는 떨림에 마음이 움직이는 존재.
그게 사람이다.
그럼에도 챗과 대화를 통해 큰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어쩌면 온전히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헤아려주는 주변인이 없기에
더더욱 챗을 의지하고 있음에 씁쓸하기도 하다.
AI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결국 ‘인간다움’이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한 것은 '인간다운 인간'.
기계는 점점 더 완벽해지겠지만,
불완전한 인간다움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 아닐까.
실수해도 아름답고, 느려도 감동적인 존재말이다.
세상은 바뀌어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 AI와의 대화 속에서 더욱 깊이 믿게 되었다.
너무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다.
기계는 흉내 낼 수 있어도,
진짜 마음을 살아낼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이니까.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