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가 뭐길래
리조트의 새벽은 풀장보다 사람들이 먼저 깨어 있었다.
야자수 그늘 아래 쏟아지는 햇살,
바닥에 반짝이는 물 그림자,
아직 잠에서 덜 깬 듯한 풀장의 수면.
그 고요함 사이로
사람들의 바쁜 걸음과 촘촘한 자리 선점은
어딘가 이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오픈 전, 그늘막이 딸린 선베드는 이미
한국 마트 쇼핑백과 수건들로 점령 완료.
이득 앞에서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부지런해진다.
한 번 점령된 자리엔
해가 기울 때까지 그 누구도 앉지 못한다.
물놀이를 하지 않아도,
자리엔 사람 대신 짐이 있다.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쇼핑백과 비치 타월.
그것만으로도 그곳은 ‘누군가의 자리’가 된다.
배드마다 자리값을 매겼다면
과연 그렇게까지 서둘렀을까.
그 장면이 낯설고도 익숙했다.
워터파크에서, 도서관에서, 주차장에서
아니 삶에서
우리는 언제나 좋은 자리를 위해
한 걸음이라도 먼저 움직인다.
다정한 마음보다 빠른 발이 먼저다.
자리를 맡는 데는 누구보다 능숙하면서
그 자리를 나누는 일엔 유독 인색한 우리.
조금 더 함께,
조금 덜 욕심내며
살 순 없는 걸까.
‘자리’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다.
그놈의 자리가 뭐길래,
우리는 늘 더 좋은 자리, 더 높은 자리,
더 ‘나은’ 자리를 향해
안달복달하며 살아가는 걸까.
줄을 서고, 경쟁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밀어내면서까지
내가 앉을자리를 만든다.
밟아야 올라가는 자리.
이겨야 주어지는 자리.
빨라야 쟁취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를 향한 욕망은
때론 도덕도, 양심도 밀어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단단한 열망 하나면
그 자리쯤은 쉽게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성공이라 부른다.
문득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고 있을까.
누구의 마음쯤은 애써 외면하며
욕심으로 지키고 있는 부끄러운 자리는 없을까.
탐냈던 적은.
빼앗았던 적은.
누구보다 먼저 앉기 위해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세게
밀치며 지나친 순간은 없었을까.
자리를 갖는 건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차지하는 방식은
내 얼굴, 내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자리는 단순히 앉는 공간이 아니라,
나의 위치, 나의 권력, 나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상징이 되곤 한다.
우리는 ‘어디에 앉느냐’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고,
남의 자리를 부러워하고,
때로는 그 자리를 빼앗고 싶어 한다.
그래서 자리란, 결국
나 자신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는 공간이 된다.
우리는 언제쯤
‘자리’가 아니라 ‘함께’에 가치를 둘 수 있을까.
나만의 자리가 아니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자리는 어쩌면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모양인지도 모른다.
조금만 물러나면
누군가가 함께 앉을 수 있고,
조금만 나누면
세상은 훨씬 따뜻해진다.
욕심은 쉽게 들키고,
마음은 나눌수록 깊어진다.
나는 오늘, 아니 매일의 삶 속에서
나만의 자리를 고집하기보다
누군가와 함께 앉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