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달릴 때, 나는 걸었다.
달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나도 달려야만 할 것 같았다.
힘에 부치는 날에도 뛰었다.
멈추면, 정말 멈춰버릴까봐.
쌓아올린 것들이 와르르 무너질까봐.
처음엔 달리고 싶어서 달렸는데
어느 순간, 달려야 하니까 달리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 순간 문득,
내 달리기의 주인이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걷는다고, 뭐가 그리 큰일일까.
잠시 멈춘다고, 그게 그렇게 위험한 걸까.
옆 사람이 속도를 올릴 때마다
나도 덩달아 버튼을 누르며
그의 보폭에 나를 억지로 맞추려 했다.
내 몸이 "Stop"이라고 외치는 순간에도,
나는 멈추지 못했다.
하고 싶다’에서 ‘해야 한다’로 바뀌는 순간,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책임과 의무의 부피는 그만큼 커졌고,
세상의 소리들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지금 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멈추면 금세 뒤처질 거라고.
한목소리로 그것이 정답이라 외치는 세상.
하지만, 그 유혹과 조급함을 거절하는 일,
내 속도를 지키는 일은
무책임한 외면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어려운 용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 나는 걸었다.
누군가가 속도를 높일 때,
나는 버튼을 한 칸 낮추었다.
그리고 내 몸이 오래 버틸 수 있는 속도로
끝까지 걸어가는 나를 선택했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