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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돈 받고 싶어요

모자람을 통해 배우는 충만

by 서나송

“엄마! 우리 이제부터 용돈 받고 싶어. 우리도 경제관념을 알아야 하니까!”


뜻밖의 선언이었다.

아이들의 입에서 ‘경제’라는 단어가 흘러나왔을 때, 나는 순간 웃음이 났다. 경제라니. 사실 그 말 뒤에 숨은 건 계산기 두드리는 이성보다, 반짝거리는 ‘돈’의 이미지일 터였다. 엄마의 지갑에서 허락받아 쓰는 돈이 아니라, 내 손 안에서 자유롭게 굴릴 수 있는 ‘나만의 돈.’ 아이들은 그 맛을 알고 싶어 했다.


“좋아. 그럼 이번 월요일부터 일주일에 삼천 원.”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우와~!” 하는 탄성이 터졌다.


삼천 원. 어른에겐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는 돈. 그러나 아이들에겐 ‘내 돈’이라는 이름을 단순히 붙이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재산이 된다. 오만 원짜리 지폐는 너무 커서 손에 쥐고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지만, 삼천 원은 가볍고 자유롭다. 가볍기에 흥청망청 쓸 수도 있고, 자유롭기에 더 치열하게 계산할 수도 있다.


나는 몇 가지 당부만 덧붙였다.

“마음대로 쓸 수 있어. 다만 월요일에 다 써버리면 남은 날은 자유롭지 않을 수 있지. 그래도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사. 때로는 돈보다 네 마음이 더 소중할 때도 있으니까.”


그 말이 씨앗처럼 아이들 안에서 어떤 싹을 틔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경험만이 가르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며칠 뒤, 아이가 뛰어오며 말했다.

“엄마! 너무 더워서 아이스크림 사 먹었어. 빠삐코! 800원! 이제 2200원 남았어.”


편의점에서 보니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이 무려 1800원. 그대로 사기엔 아깝다 싶어, 발걸음을 돌려 아이스크림 할인점으로 갔다고 했다. 줄넘기 학원과 반대 방향으로 한참 돌아가야 하는 길. 결국 아이는 시간과 발품을 들여 1000원을 절약한 것이다.


아이가 들고 있는 아이스크림은 단순히 더위를 식히는 달콤한 간식이 아니었다. 땀방울로 계산된 ‘800원의 기쁨’이었다. 맛이 꿀 같았을까, 아니면 씁쓸했을까. 때로는 돈을 아끼려다 시간이 새어나가기도 하니까. 그러나 아이들에겐 그조차 배움이고 추억이 됨을 깨달았다. 돈을 절약한 게 아니라, 인생의 작은 실험 하나를 경험한 셈이다.


다음 날에는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꾹 참았다고 했다. 800원도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다.

“엄마, 문구점에서 샤프 하나 살까 했는데… 필요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안 샀어.”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천 원밖에 안 해, 하나만 사줘”라며 집에 가득한 샤프를 또 사겠다고 나를 설득하던 아이였다. 그때는 내 잔소리가 공허한 메아리로만 들렸을 텐데, 자기 돈을 직접 꺼내려는 순간, 그 천 원의 무게가 달라진 것이다. 역시, 돈의 가치는 설명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만 진짜 무게를 얻는다.





아끼고 아껴 모은 돈으로 원하는 걸 사려는 아이들에게 넌지시 건넸다.


“있잖아, 돈을 모으는 즐거움이 커지다 보면, 원하는 걸 사는 기쁨보다 더 모으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어.”


그 말은 사실 아이들을 향한 당부이자, 나 자신에게 하는 조언이기도 했다. 우리 삶이 그렇다. 돈을 모으는 재미가 점점 커질수록, 결국 마음보다 돈이 앞서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그때 뒤돌아보면 남아 있는 건 숫자뿐, 시간과 추억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입에서는 이미 여러 번

“엄마가 사줄게. 그냥 엄마 카드로 먹어.”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 마음이 튀어나오기 전에 꿀꺽 삼켰을 뿐. 아이도 스스로의 부족을 경험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배고픔을 채우는 것보다 부족함이 주는 가르침이 더 귀할 때가 있다.


모자람은 때로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는 사실을, 아이스크림 하나로 배우는 아이들의 여름날. 지갑 안의 동전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 돈으로 나눈 웃음과 추억은 오래 남았을 거다. 삼천 원짜리 지폐가 아이들 손 안에서 바람처럼 흩날리다가, 다시 작은 추억으로 접혀 들어간다.


나는 아이들의 작은 지갑이 결국엔 돈이 아닌 마음을 담는 그릇이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돈을 다루는 법을 배우되, 돈이 삶의 주인이 되지 않기를. 소중한 돈을 더 소중한 순간과 바꾸며 살기를. 추억을 잃지 않고, 마음을 저버리지 않고 말이다.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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