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엄마의 단호함
중국 캐릭터 라부부가 아이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
내 눈에는 조금 낯설고, 솔직히는 기괴하게까지 보이는 인형인데, 아이들에겐 친구들 앞에서 자랑할 수 있는 든든한 무언가가 되어버린 듯하다.
딸아이가 라부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갖고 싶다는 말을 직접 하지 않아도 마음은 거기에 가 있다는 것을.
“엄마, 누구는 라부부가 몇 개래.”
“엄마, 누구는 시험을 잘 봐서 엄마가 라부부를 사줬대.”
“엄마, 누구는 라부부가 찐이고 누구는 가품이래.”
하루에도 몇 번씩 흘러나오는 그 말속에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은근한 부러움과 욕망이 섞여 있었다. 가품이 나올 정도라면 이미 아이들 세계에서는 필수템, 잇템이라 불려도 부족하지 않으리라. 정품을 구하지 못하면 가짜라도 갖고 싶은 마음, 이건 비단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갖지 못하면 뒤처지는 것 같고, 소유해야만 내가 조금 더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내 안의 욕심,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의 행복, 비교하고 싶은 마음까지.
솔직히 불편했다. 순간의 행복을 위해 그렇게까지 달려야 하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는 꽤나 많이 안겨주었으니까. 시크릿쥬쥬, 티니핑, 포켓몬, LOL, 산리오 등등 … 이름조차 다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캐릭터들이 아이 곁을 스쳐 지나갔다. 인형뿐 아니라 가방, 옷, 문구까지, 유행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끊임없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괜찮아, 이 정도는 아이 마음을 채워주자. 괜히 욕구불만 만들지 말자.'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인형들이 금세 구석에 방치되었다. 먼지가 쌓여도 다시 찾지 않는 물건들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채워진 기억은 금세 사라지고, 부족했던 순간만 오래 그림자를 남겼다. 결국 갖고 싶던 것이 사라지는 건 너무나 쉽고, 욕망의 불길은 생각보다 짧게 타오르고 금세 꺼져버린다는 걸 매번 깨달았다.
부모의 마음 한쪽에는 늘 다 해주고 싶은 진심이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 눈빛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 진심 때문에 다 해줄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번 라부부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을 단단히 붙잡았다.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려면, 갖고 싶은 것을 다 갖는 경험보다, 때로는 내려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여겼다. 기다리는 법, 때를 아는 법, 자기의 형편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인정하는 법, 갖고 싶은 것을 내려놓을 줄 아는 절제,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힘. 이런 것들은 부모가 대신 채워줄 수 없는, 아이 스스로 길러야 할 삶의 근육이다. 세상은 언제나 비교와 욕망으로 우리를 흔든다. 아이가 그 바람 앞에서 휘청이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내면의 중심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 이런 힘은 어른인 나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덕목이다. 살아보니 원하는 것을 제때 얻지 못하는 순간들도, 끝없이 채우고 소비하느라 지쳐버린 날들도 많았다. 그 시간들을 지나며 알게 된 것은, 욕망은 결코 우리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 채울수록 오히려 더 큰 허기를 남긴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닌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도 여전히 어른 버전의 라부부를 탐하고 있는 건 아니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아이들이 라부부를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처럼, 어른들도 크고 작은 것들을 내세우며 살고 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화려한 이력, 더 멋진 여행 사진… 그것들을 소유하고 보여주며, 마치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증명해 주는 듯 의지한다. 소비는 끝이 없고, 채워도 채워도 또 다른 빈자리가 생긴다. 눈길 닿는 곳마다 남들의 삶이 펼쳐지는 세상, 원하지 않아도 보이는 세상 속에서 중심을 잡는 일은 갈수록 어렵다.
나는 아이가 그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때로는 단호해야 했다.
불편함을 견디는 법, 부족함 속에서 스스로를 단련하는 법, 비교 속에서도 자기 마음을 지키는 힘을 배우길 바랐다.
아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순간의 기쁨도 소중하지만, 그 기쁨에만 매달리면 금세 사라져 버리는 빈자리에 휘청일 수밖에 없다고.
갖지 못해 울던 순간보다, 끝내 참아내며 배운 인내가 더 오래 삶을 지탱해 준다고.
진짜 힘은 소유에서 오는 게 아니라, 선택에서 온다고 말이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 오늘을 돌아보면, 아이도 알게 되리라.
갖지 못한 라부부 때문에 속상했던 그 순간이, 오히려 자기 마음을 단단하게 했다는 것을.
그리고 인생에서 또 다른 수많은 ‘라부부’를 만날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짜 네 것이 되는 건 물건이 아니라 선택이야. 그 선택은 어떤 유행도, 어떤 비교도 빼앗을 수 없는 너만의 힘이란다.”
건반 밖 엄마, 서나송
사진 출처 : POP MART 홈페이지 https://www.popmart.co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