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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흙수저도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

부유함과 부요함

by 서나송

“엄마! 내 친구가 자기는 다이아몬드 수저래. 그게 뭐야?”


저녁 식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밥을 한 수저 뜨려던 딸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처음 듣는 말이었다. 금수저도, 흙수저도 아닌 다이아몬드 수저.

금 값이 치솟는 지금이 아닌, 금보다 다이아몬드가 더 귀하다는 가치를 알고 말한 듯했다.


"엄마! 그 친구가 하도 자기가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하니, 내 짝꿍이 물어봤어. '그래서 너네 할머니 집이 몇 평인데?' 그랬더니 방이 다섯 개고, 집에 수영장도 있다고 자랑하더라고."


딸은 친구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 덧붙였다.


열 살 아이들의 대화가 놀랍기도 하고, 어쩐지 서늘했다.

물려받을 재산이 많다는 것을 자랑처럼 말할 수 있는 나이. 마음 한켠이 쿵하고 주저앉는 기분이었다.


“금수저가 뭔지 알아?”

“음… 집에 금이 많다는 거. 부자라는 거?”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뜻이야. 태어날 때부터 좋은 환경, 그러니까 지위가 높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한 부모를 두었다는 거지. 그런데 엄마 생각엔 진짜 금수저는 자신이 금수저라고 자랑하지 않는 사람 같아.”




나는 평소 아이 앞에서 집 크기나 자가나 전세, 차 종류를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사는 평수나 차의 브랜드를 묻는 날이면 대개 친구가 자기 집 이야기를 한 날이었다. 그 아이들은 아마도 부모가 흘린 말을 촘촘히 주워 들었을 게다. 아이들은 부모의 자랑이든 걱정이든 그 뉘앙스를 놀라울 만큼 정확히 알아채니까. 나도 그랬다. 어린 시절, 부모의 대화 사이사이에서 풍족함과 불안을 번갈아 물려받곤 했다.


다이아몬드 수저를 말하던 아이의 집에도 그 부모의 그림자가 아이의 말끝에 스며들지 않았을까. 비교에서 오는 얄팍한 우월감, 눈에 보이는 재산이 많을수록 더 잃을까 두려운 마음, 어쩌면 보여주기 싫은 불안이 깃들어 있을지 모른다. 있는 것을 티 내야만 주어지는 안심, 자신을 무시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 말이다.




부라는 것은 무엇으로 잴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눈에 보이는 것으로 계산한다. 평수, 통장 잔고, 차의 엠블럼, 여행지의 이름. 숫자로 표시되는 재산과 표면의 화려함이 삶의 성패처럼 불린다. 하지만 그 척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다. 가진 것만큼 부자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것도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채워도 채워도 더 큰 그릇을 바라보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가난해진다. 보이는 부가 사라지면 끝내 남는 건 결국 마음의 모양뿐이니까.


나도 때때로 내가 가진 것들, 누리고 있는 것들을 셈하며 안도하면서, 남들이 가진 것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문득 떠오른다. 아무리 금으로 도배한 집이라도 대화가 사라진 식탁은 텅 빈 광산 같다는 사실. 웃음이 오가는 부엌, 서로를 향한 믿음과 시간, 그것이야말로 오래 묵을수록 더 값이 오르는 진짜 부가 아닐까. 퇴근길에 들른 편의점에서 아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마음, 서로 피곤해도 “오늘 고생했어” 한마디를 먼저 건네는 저녁의 인사, 힘겨운 하루에도 아이의 숙제를 함께 앉아 보는 마음. 이런 것들이야 말로 값을 매길 수 없지만 집 안의 온도를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재산이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 나는 아이의 이불을 살짝 고쳐주며 저녁 식탁에서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아도, 비교하지 않아도 이미 충만한 삶에 대해서.

벼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듯 가진 마음이 깊을수록 더 낮아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다이아몬드는 빛을 받아야만 반짝인다. 하지만 흙은 빛이 없어도 씨앗을 품고 새 생명을 키워낸다. 내가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부는 그 흙 같은 부요함이다. 빛이 꺼져도 사라지지 않는 온기,

누군가를 살리고 지켜내는 힘.


언젠가 사라질 수 있는 눈에 보이는 부(富). 세상은 여전히 지위와 재산을 기준으로 사람을 분류하지만, 내 아이는 세상과 다른 눈금을 가진 자로 언제든 주어진 풍요를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딸이 어른이 되어 세상의 수많은 수저들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고를 때, 그 선택이 반짝이는 돌멩이가 아닌 단단한 흙이길, 나는 묵묵히 기도한다.



부유함은 잃을까 두려워 움켜쥐게 만들지만, 부요함은 나눌수록 더 깊어지는 힘을 품고 있다.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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