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will be fine.
루틴이 무너지는 걸 생각보다 싫어하는 사람이 나였다.
싫어한다기보다, 어쩌면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순서로 하루를 이어가며 조금씩 견고해지고 있다고 믿던 나의 질서가 예상치 못한 통증 앞에서 너무 쉽게 흔들렸다.
자리가 없어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매복 사랑니를 발치하라던 말을 처음 들었던 건 십 년 전이었다. 그때도 두려웠다. 일어나지 않은, 그러나 일어날 수도 있는 부작용들에 대해 의사는 조심스레 경고했지만, 나는 그 말보다 앞서 두려움을 먼저 들었다.
‘지금 뽑는 게 낫다’는 믿음 대신, ‘혹시라도 신경이 손상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이겼다.
그렇게 미루고 미룬 시간이 십 년.
두려움이란 이런 거였다. 할 수 있는 일을 무한히 미루게 하는 감정.
이따금 통증이 심해질 때마다 치과를 찾았지만, “무조건 뽑아야 한다"는 말과 “좋지 않은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 함께 따라왔다. 결국 발치를 결심한 건, 그대로 두었다가 찾아올 고통이 더 클 수도 있겠다는 또 다른 두려움 때문이었다. 사랑니 발치 전문 병원을 찾아 가장 싫은 리클라이너 의자에 몸을 맡겼을 때,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뽑기 힘든 사랑니인가요? 신경 손상 가능성은 얼마나 되나요?”
십 년을 망설인 이유를 나름대로 강하게 어필했다.
그때 무덤덤한 의사의 한마디가 불안으로 요동치던 마음을 잠잠하게 했다.
“희박해요. 그럴 수도 있다는 것 뿐입니다.”
참 신기했다.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그 한마디에 마음은 이미 평온해졌으니.
두려움이란 이런 거였다. 어쩌면 한순간에 이겨낼 수 있는, 생각보다 나약한 상대.
그러나 발치 후 찾아온 통증은 예상하지 못한 후유증이었다. 사랑니가 빠진 자리보다, 그 자리를 끝까지 붙잡고 있었던 잇몸의 근육이 문제였다. 그 긴장이 턱관절과 어깨, 귀, 뒷목까지 번져 진통제조차 제대로 듣지 않았다. 입을 벌리기도 어려웠고, 음식을 씹는 일은 거의 고역이었다.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밥을 넘기면 소화가 되지 않았고, 양치 후엔 더 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마취가 풀리고 감각이 돌아왔을 때, ‘신경 손상은 없구나’ 하는 안도감도 잠시, 새로운 통증이 또 다른 검색어로 이어졌다. 인터넷 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정보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이야기뿐이었다.
두려움이란 이런 거였다.
내 마음의 균열 틈새를 노려 언제든 스며들 준비가 되어 있는 교활한 녀석.
약 때문에 건너뛸 수 없는 끼니는, 씹는 일조차 불편하니 고통스러웠다. 애써 단련한 아침 러닝 루틴을 멈추자 하루의 리듬이 깨졌다. 간신히 늘린 근육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거울을 볼 때마다 뱃살이 차오른 것 같고, ‘다시 달리면 숨이 차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번졌다.
사랑니가 잇몸을 밀어낼 때, 그건 단순히 치아 하나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애써 붙이고 버텨온 일상의 근육에 생긴 균열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그럴 것 같은 느낌’일 뿐, 사실이라기보다 불안이 만든 그림자였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일, 그게 얼마나 사람을 병들게 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두려움이란 이런 거였다.
‘불안’을 미끼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갉아먹는 고약한 감정.
‘내가 이렇게 예민했나?
이렇게 강박적인 사람이었나?’
턱보다 마음이 더 욱신거렸다.
가을을 순식간에 빼앗아간 듯한 찬바람이 불던 아침, 긴 옷을 챙겨 입고 운동화 끈을 묶었다.
‘모르겠다. 나가보자.’
당분간 운동하지 말라는 주의사항을 접어두고, 몸보다 먼저 무너진 마음의 부작용을 달래기 위해 나는 다시 루틴을 회복하기로 했다.
빠르게 걷자는 마음으로, 아니면 돌아오자는 담담함으로 몸을 풀었다. 찬 공기가 얼굴을 스치며 내 어두운 생각들을 조금씩 흩어놓는 것 같았다. 오른쪽 턱관절은 여전히 쑤셨지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눈앞의 하늘, 바람, 나무가 두려웠던 발을 앞으로 내딛게 했다.
1키로가 2, 3 키로로 이어질 때마다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며 두려움이 있던 자리에 위로와 용기가 대신 들어섰다.
두려움이란 이런 거였다.
움직임 앞에서 힘을 잃는, 신기루 같은 것.
추위에 대비해 잔뜩 껴입은 나와 달리, 찬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는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움직일 수 없는 그 자리에서 계절의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나무. 어쩌면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그토록 단단한지도 모르겠다.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이 떠올랐다.
발목과 무릎에 물이 차 퉁퉁 부은 다리를 끌면서도 일을 멈추지 않던 분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진심으로 걱정되어 늘 염려했다.
“할머니~ 그만 좀 하셔. 계속 움직이니까 물이 차지. 더 심해져서 못 걸으면 어쩌려구…”
많이 아팠을 텐데, 할머니는 늘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가만히 있음 뭐하냐. 아픈 것만 골똘히 생각하지. 움직여야 덜 아퍼. 움직일 수 있을 때 움직이는 게 복이지. 이러다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가면 되는겨~”
그때는 몰랐던 그 말의 진심을 오늘이 되어서 이해한다.
움직임 속에서 희미해지는 고통들, 그 단순한 행위가 머릿속을 부정적인 생각 대신 삶으로 채워 넣는다는 걸.
두려웠던 사랑니 발치를 마무리하고, 또 다른 두려움에 휩싸이기 전 알게 된 흔한 감정, 그러나
통과해야만 하는 삶의 고통 중 하나가 두려움이다.
두려움이란 이런 거였다.
고여 있을 때 커지고, 움직일 때 흩어지는 감정.
붙잡고 있으면 염증이 되고, 비워낼 때 비로소 새살이 돋는 마음.
결국 두려움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직면할 때 통과할 수 있는, 내 안의 마음이었다.
그래서 믿고 싶다.
그리고 믿어야 한다.
감당할 마음을 주셔도, 내가 택하지 않으면 결코 잡을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이라는 걸.
변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나의 마음’뿐임을 말이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