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반응하는 법
아이의 반항,
복종 아닌 순종을 찾는 살아있는 마음의 연습
최근 들어 둘째 아이는 부쩍 자기만의 성질을 드러내고, 때로는 나를 향해 노골적으로 반항한다. 따박따박 말대꾸를 할 때면, 그 논리가 제법 정연해서 헛웃음이 나오다가도 문득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렇게 언성이 높아지려다 문득 내 안의 질문과 마주한다.
'내 모든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복종인가, 진심 어린 반항인가.
아이의 반항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순종(順從)’과 ‘복종(服從)’ 사이의 간극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억지로, 혹은 무서워서, 부모의 권위에 눌려 마음을 닫은 채 따르는 것은 순종이 아닌 복종일 테다. 그것은 살아있는 영혼이 내리는 '거짓된 긍정' 말이다.
차라리 진심 어린 반항이 낫다. 적어도 그 속에는 살아 숨 쉬는 아이의 마음, 그 개별적인 의지가 담겨 있으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잠시 속이 상할지라도, 그 반항은 아이가 스스로를 세상에 내보이는 방식이며, 나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하는 건강한 신호일 수 있다. 아이가 억지로 마음을 억누르고 'YES'라고 말하는 대신, 'NO'라고 솔직히 말할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감정의 예의 :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문제는 늘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있다. 불쾌함, 속상함, 억울함, 화남, 서운함… 이 모든 부정적인 마음을 더 좋지 않은 방식, 즉 무례하거나 폭력적인 태도로 표출한다면, 그 감정은 결국 상대방에게 깊은 상처로 돌아오고 관계를 망치고 만다.
나는 결국 같은 말을 아이에게 되뇔 수밖에 없다.
“네 마음을 상대에게 예의 바르게 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해.”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단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만 지켜야 할 규범이 아닐 것이다. 친구에게도, 심지어 어린 사람에게도 지켜야 하는 인간 대 인간의 존중이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연습해야 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하는 성숙함’이니까.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경솔한 태도를 보이는 것만큼 관계를 훼손하는 일도 없다. 아이에게 가르치는 이 예의는, 사실 나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다짐하는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물론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좋지 않은 마음을 순간순간 있는 그대로 다듬지 드러내지 않고 다듬는 일은 어른에게도 고통스러운 수행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연습하고, 또 연습할 뿐이다.
내가 아이의 일시적인 감정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 일시적인 감정이 다듬어지지 않은 채 ‘고착화된 태도’로 굳어질까 봐 두렵다. 그래서 엄마인 나는 다시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가 감정을 해소하는 건강하고 예의 바른 방식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아이와 함께 배우는 나날
매일 아침 신는 러닝화 위에 딸아이가 작은 편지 한 통을 올려두었다. “머리와 말이 따로 논다”는 솔직한 고백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진심 어린 다짐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잠들기 전 내내 자신의 행동과 나의 가르침 사이에서 고민했던 모양이다.
참 이상하지. 진심은 언제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다.
아이의 꾸밈없는 진심은 나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깊이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아이에게 진정으로 예의를 갖추었을까?’
‘아이의 불쾌한 태도에 정직하게 반응했지만, 그 반응 속에 따뜻함과 존중을 담았을까?’
아이를 가르치는 순간에도, 나는 아이에게 배우고 있다.
아이가 보여주는 그 ‘살아있는 마음’을 어떻게 예의 바르게 다듬고 세상과 소통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나 또한 순간의 기분을 태도로 만들지 않으려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의 반항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관계와 삶의 태도를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임에 감사하다. 아이와 함께 존중과 예의를 배우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소중한 시간들. 이 과정이 서로에게 진정한 배려와 사랑을 알게 해 주리라 믿는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