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도 결국 찾아오는 빨간불
도착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시간을 맞추려면 조금 서둘러야 했다.
캄캄한 새벽, 한산한 도로는
속도를 조금 더 내고 싶은 마음을 부추겼다.
나는 약간의 긴장감과 자유를 느끼며 주행했다.
그때, 앞에서 세월아 네월아 참으로 여유롭게 달리는 차 한 대가 나의 본능을 가로막았다.
속이 답답해졌다.
그 앞에도 차가 있는지, 밀리는 건지 고개를 빼보았지만, 왼쪽 차선은 뻥 뚫려 있었다.
나는 방향을 틀고 엑셀을 밟았다.
‘왜 저래?’
혼잣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앞차를 지나쳐 다소 해방된 마음으로 달렸다.
추월하자마자 그 앞차도 별만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다.
규정속도 안에서 이상하리만큼 여유로운 주행.
물론 규정 속도를 지키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제한 속도의 최대치를 달리고 싶었다.
잠시 후, 신호등이 내 앞에서 주황으로 바뀌었다.
브레이크를 밟았고, 정지선 바로 앞에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달려온 속도만큼 빠르게 찾아온 멈춤이었다.
백미러를 봤다.
조금 전 추월했던 그 차가 보였다.
느긋하던 그 속도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내 옆에 나란히 섰다.
앞섰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멈춰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조바심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빨간불이 다시 초록으로 바뀌자, 그 차는 일정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다.
내 앞엔 다른 차가 끼어들었고, 나는 다시 속도를 줄였다.
그 짧은 순간, 앞서 달려도 결국 같은 신호등 앞에선 함께 멈춘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결국 도착 시간은 원했던 만큼 빠르지 않았다는 것도.
살다보면 종종 이런 순간들이 있다.
누군가를 앞지르려 안달하다가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마주하는 순간. 더 빨리 가려 했지만, 도착 시간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하지만, 길이 다르고, 속도가 달라도 계속 달릴 수도 없고, 계속 멈춰서있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된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언제나 초록불일 수는 없다.
빨간불은 멈춤을 요구하며, 그 멈춤이 때로는 가장 안전한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자주 잊는다.
속도를 내는 건 어렵지 않다.
문제는, 내가 왜 그렇게 서두르는가다.
더딘 속도에 답답해하고 내가 멈춰 있는 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삶의 리듬은 누구에게나 다르고, 결국 각자의 길을 달리는 것인데도 우리는 속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달려보면 안다.
앞서 있던 사람이 어느새 내 뒤에 있고,
내가 뒤에 있던 사람이 다시 앞서간다는 사실을.
그렇게 순서는 계속 바뀐다.
마치 도로 위의 차선처럼, 인생도 끊임없이 엇갈리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빨리 간다고 해서 늘 앞서는 것도 아니고,
늦는다고 해서 영원히 뒤처지는 것도 아니다.
조금 다른 속도일 뿐, 결국엔 다 비슷한 시점에 도착한다.
그래서 이제는 굳이 비교하지 않으려 한다.
순서가 전부가 아니니까.
우리는 종종 뒤처지는 걸 두려워하지만,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결국
모두가 비슷한 속도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일찍 출발하고,
누군가는 조금 늦게 출발하지만,
도착점은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내가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안전한 속도를 지키고 있는가이다.
삶은 결국 각자의 페이스로 흘러간다는 걸 알아차렸다.
결국 나만의 속도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늘 새벽, 나는 한 가지를 다시 배웠다.
빠름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내가 앞섰다고 해서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며,
느리다고 해서 뒤처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앞에 다른 차가 끼어들어 속도가 늦춰졌을 때
오히려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다음 신호가 초록불일지 빨간불일지 모르니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까.
인생의 신호등은 누구에게나 있다.
달리다 보면 누구나 멈추게 되고
그건 날 뒤쳐지게 하는 것이 아닌
방향을 잡아주는 유일한 시간일거다.
빨간 불빛 아래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내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
그게 어쩌면 진짜 ‘전진’일지도 모른다.
서나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