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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

Are you happy?

by 서나송

길 하나가 삶을 갈랐다.

그곳을 즐기러 온 사람,

그곳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


겉으로 보이는 삶이 낡고 어둡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그렇지는 않을 텐데.

어쩌면 마음은,

가진 자보다 더 풍요로울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사진에 담았다.

행복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걸,

내가 기억하고 싶어서.







그런데,

정말 낡은 모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자신이 지불한 돈으로 누군가를 먹여 살린다며

반말을 내뱉으며

하대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

가끔 낯이 뜨거워지고 마음이 불편했다.


“거기 물 차가워! 애 감기 걸려!

여기서 데리고 놀아.”


아이 앞에서,

한국어로,

필리핀 시터에게 우월함을 과시하는 모습.


그 말투는 쉽게 전염됐다.


“여기서 놀아? 알았어, 알았어.”


자신이 던진 말을,

자신이 그대로 되돌려 받았다.


한국말에 익숙한 그들은

과연 몰랐을까?

무례인지, 존중인지.

어쩌면 그 무례함을 모른 척 넘긴 건,

이미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문장 하나가 가슴 깊이 박혔다.



사람들이 쓰레기라고 부르는 것들이지만 가끔은 아직 봐줄 만한 꽃들이 남아 있기도 했다. 나는 그 시든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 로자 아줌마에게 선물했다.

–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남들이 버린 시든 꽃들로

꽃다발을 만들어 건넬 수 있는 마음.

행복의 무게를 재는 저울 위에서

결핍도, 풍요도 기준이 되지 않는다.



삶은 종종 아주 작은 차이로 갈린다.

길 하나, 선택 하나, 가진 것 하나 차이로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누군가는 그 길 위에서 ‘불행’을 말하고,

누군가는 같은 풍경 앞에서 ‘감사’를 말한다.

그래서 행복을 보여지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행복은 외형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결로부터 시작되니까.



저울 위에 올릴 수 없는 것,

그게 바로 행복이다.



서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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