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오래도록 찔러도
그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이다지도 아프지만 격렬한 사랑이 또 있을까.
그런 사랑을 위해서라면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는 시인의 언어가
마음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온다.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최승자
겨울 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雪)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 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 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 없는 헤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 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