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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19. 2023

느슨한, 미온적 관계

긴 연애를 끝내고 자유로운 만남을 추구해 왔다. 여러 사람을 스쳐 보냈고 지금까지 연을 이은 이도 있다.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관계이며 더 깊은 감정도 시간도 나누지 않는다. 요즘 많이들 말하는 FWB라고 할 수 있겠다. 처음은 혼란스러웠고 나의 스텐스를 어떻게 둬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바쁜 일상이 관계의 고민을 무디게 했다. 


너무 많은 걸 바라고, 기대하고, 실망하던 지난 연애가 지겨웠다. 사실 내 욕심이고 어리석은 생각이었음을 이제는 잘 알지만 그때는 그러했다. 더 애정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 관계는 나를 아프게도 괴롭게도 하지 않았다. 공백이 생길 때면 외롭기도 공허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감정이 끼어들어도 그런가 보다 싶다. 익숙해진 걸까. 외면하는 걸까. 


어느 때보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섹스는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다. 육체적인 쾌락이 주는 효과는 꽤 크다. 고통도 아픔도 잘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달까. 주기적으로 한다면 더 효과적이다. 이전의 나에겐 섹스는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나를 위한 육체적인 행위가 된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는 육체적인 쾌락이 부족하더라도 정서적인 쾌락이 충만하다면 더 좋았던 건 사실이다. 그때가 가끔은 그립긴 하다. 단순히 육체적인 쾌락만을 느끼는 것과 두 가지 모두를 얻는 것,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만큼 깊은 감정을 갖다는 것이 어렵다. 그렇게 애정하던 사람과 상처를 주고받으며 싸우는 것이 싫다. 사실 친구든 연인이든 똑같을 것이다. 관계를 이어오다 보면 당연히 싸울 수도 서로 보지 않을 수 있다. 나에겐 두려운 마음, 누군가 듣기엔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이를 감수하는 이들도 많으니까. 나 역시 이를 감수하고 다시 사랑하고 싶어 질까. 그 시작엔 어떤 마음이 있을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 관계를 지양했지만 되려 그런 관계를 지향하게 돼버린 나. 모순의 반복이다. 가끔은 깊은 연애를 하고 싶다가도, 지금에 만족하기도 한다.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에 서있을 때면 답답하기도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더 바라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관계가 피로해진 걸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하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저 당장 마주하는 순간을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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