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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04. 2017

봄을 기다리는 사람

날이 차가워지기 시작하면 언제나 검붉은 반점들로 가득했던 나의 끝 손. 건조해진 탓에 갈라진 각질을 뜯고 또 뜯었기 때문이다. 울긋불긋하게 부어도 피가 나도 뜯고 있었다. 금세 손톱 밑은 그 잔해물이 얼기설기 끼여 지저분해져 있었다. 앙상하고 보잘것없는 내 손, 그 더러운 상처에 그 사람의 시선이 왔다. 나는 그 손을 보이기가 부끄러워 감췄지만 그 사람은 한사코 손을 끄집어내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밴드를 붙이라고 그러면 뜯지 않을 거라고. 그 말에 난 괜찮다고 금방 괜찮아질 거라고 얼버무렸다. 그래. 인마. 고집 센 녀석.이라는 표정을 하고 말았다. 버릇처럼 손을 뜯다 그때가 떠올랐다. 그래도 제법 이번 겨울은 무사히 잘 보냈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 인상을 잔뜩 쓴 표정을 하고 옷을 여미면서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겨울내내 잊지 않고 말했다. 매해 추위는 사그라들고 있는데 그렇게 싫은가 보다. 그 사람 얼굴 한번 보기가 어려웠다. 어제 주문한 황인찬 시인의 시집이 왔다. 새. 개. 그는.. 이 책을 추천해준 그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 어떤 글이 좋았을까. 어떤 생각을 하며 읽었을까. 단편 소설집과 선물할 책도 함께 있었다. 요즘 책을 읽는 재미에 빠졌있다.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기 위해 이것저것 안 가리고 읽어보려고 한다. 한마디라도 더 건네 볼 수 있을 테니까.


눈을 감고 있을수록 시간은 더 빠르게 가는구나. 아침에 잠에 깬 시간을 보며 미련함을 느꼈다. 답답하고 방은 너무 차 방바닥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싫었다. 그렇게 또 아무것도 먹지도 하지도 않은 채로 보내다 옷을 갈아입었다. 화장을 하고 전철에서 읽을 책과 메모지, 볼펜을.. 챙겨 나왔다. 미술관 앞. 떠나가는 시간. 사람이 적지 않을까는 나의 착각이었다. 오늘은 주말이고 이곳은 공공장소잖아.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걷고 또 걷고. 이 나무들 사이사이 벤치에 몇몇의 노인들은 무엇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그 사이를 걸어 다시 그 곳으로.


전철 역시 사람으로 가득했다. 어느 모녀가 날 밀었고 나는 그들을 보았다. 딸은 엄마에게 밀지 마요 사람이 째려봐요 라고 말했다. 엄마는 나를 가리키며 누가라고 말했다. 음악을 듣고 있었지만 그 정도 거리에서는 그 정도 대화는 다 들린다. 마치 내가 쳐다본 것이 잘못인 것처럼 대화하던 모녀. 밀 수도 있지 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볼게 아니라 사과하면 돼요. 속으로 몇 번이고 말하면서 이어폰 볼륨으로 그 대화가 들어올 틈을 막아버렸다.


일본에서 짧은 여행을 마친 동생이 와있었다. 알 수 없는 풍선들과 함께 그 애는 웃고 있었다. 내 방 천장에 풍선들이 둥둥 떠있다. 왜인지 외로운 날이었다. 책을 읽어도, 화장을 지워도. 혼자 있어도 외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연애를 안 해서라고 내 친구들을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쓸쓸하고 씁쓸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것을 원하고 있는지. 나는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던진 근본적인 질문들에 회피하는 내 고갯짓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침울한 생각에서 깼을 때 내 손과 발은 차가워지고 있었다. 봄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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