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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22. 2017

엄마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는 나의 일과는 크게 한 달 주기로 흘러간다. 대략 1주는 촬영과 취재를 위한 자료조사로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 많으며 2주는 본격적인 취재와 촬영을 하기 위해 외근이 잦다. 그리고 기사 작성과 레이아웃 작업 등 잡지가 나오는 마감 순간까지, 그렇게 한 달을 마무리한다.

다양한 타인과의 소통, 생각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 집에서 잠시 쉬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을 하지 않거나 잡지에서 할 수 없는 어떤 갈증을 해소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다음 달 기획안을 작성하기 위해 다시 집에서 자료조사를 시작한다.

내가 집에서 일하는 동안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나갔다 왔니?”다. 여기서 “네”라고 답했을 때 돌아오는 말은 “어디?”다. 즉 회사를 다녀왔는지를 묻는 것이다. 내가 집에 있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나의 부모에겐 ‘외출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쉽게 단정 지어진다. 자신의 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다. 때론 그 말과 불안한 표정을 보고 싶지 않아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다 늦게 들어가곤 했다. 한창 촬영과 취재로 기사를 쓸 때 자주 새벽에 귀가하곤 하는데 그때만큼 날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과 말에서 큰 안도감이 묻어날 때도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엄마는 나에게 전공을 살려 공학계열의 직업을 다시 선택하는 것과 공무원을 준비하라고 했었다. 이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엄마는 성공 못하기만 하라며 나에게 경고하기도 했다. 이 바닥은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쌓아 다른 매거진의 객원기자나 정기자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서도 없는 비정규직. 연봉 1000만 원의 비정기적인 급여를 받으며 1년을 버티는 동안, 엄마는 내게 언제쯤 정기자가 될 수 있냐고 끊임없이 물었다. 회유하듯 자신의 바람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너는 분명 편집장 정도는 할 애라고.


그렇게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단절에 가까웠다. 눈을 마주치는 것도 싫어졌다. 잠시 있어도 엄마는 나의 일에 대해 물었고, 나는 했던 말을 또 하며 결국 엄마에게 짜증을 냈다. 점차 나의 표정은 없어졌고 엄마의 진심이 무엇인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저 돈을 못 벌고 자신을 부양하지 못하게 될까 불안한 것인지, 그저 남들에게 말하고 싶은 딸이 되지 못한 것이 싫은 건지, 과연 나를 위한 걱정이 맞는 것인지.

타인과 소통을 통해 글을 쓰는 딸은
정작 자신을 낳고 기른 엄마와
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을
싫어하는 딸이지만  
극복할 의지가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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