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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Mar 28. 2017

성북동에서 동숭동

‘냉장고 정리를 왜 못하냐는 남편의 말에 나도 너와 똑같이 대학 가서 전공 공부하고 일하던 사람이었는데 나는 왜 냉장고 정리를 잘해야만 하냐고 말했었어’

<그녀들의 일상 일지> 전시 중 주부인 여성의 이야기다. 미혼이지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강요되는 성역할에 익숙해져인지 그녀들의 이야기가 남일 같진 않았다. 아쉽다고 생각이 든 건 아빠와 딸 사이의 갈등은 없었나였다. 성은 동일하지만 대상이 달라질 뿐이긴 하다. 결국 일상에서 듣는 말들로 인해 다른 경험임에도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나를 봐도 그렇다.

씁쓸한 마음을 풀지 않고 그곳에 나와 걸었다. 기름 볶는 고소한 냄새에 멈춰 섰다.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발길을 재촉했다. 걷다 마주한 길목은 가파르지도 어지럽지도 않은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앞서가는 사람을 추월하며 빨리 걷기도 하다가 아무도 없다 싶을 땐 느리게 걸었다.


빨간 벽돌이 보이지도 않게 쇠파이프와 녹색 그물로 둘러싼 건물에서 두 여인이 나와 담배를 물며 건물 뒤 편으로 사라졌다. 마치 감옥 같았다. 공사 중이었던 건물 1층에는 소극장이 있었다. 연극 <윤동주  특별사면>이 공연되는 곳이었다. 왠지 낯설지 않다고 생각했다. 2년 전 겨울, 낯선 이의 장갑을 나눠 끼고 낙상 공원을 넘어 처음 와보는 길까지 나란히 걸어갔다. 날씨에 비해 제법 얇은 옷차림이었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을 뿐인데, 그 추운 날 내 말 한마디로 그리 오래 밖을 서성일 줄은 나 자신도 몰랐던 거다. 옛 기억에 조금 쌉쌀한 웃음이 나왔고 어느새 깻잎 떡볶이집 앞이었다.

학림다방에 나왔을 때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어김없이 배가 고팠다.

“선배 배 안 고파요? 저기가 대학로 명물이에요. 우리 먹고 가면 안돼요? 대학로 공연하는 사람들은 안 가본 사람이 없대요.”

아쉬운 마음에 배고픔을 더해 말했다. 나는 선배에게 자주 배고프다고 말했었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게 목적은 아니었나 보다.

그때의 나와 걷다 보니 대학로 중심에 서있었다. 타인이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좋아 공연장을 자주 찾았던 이곳.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한껏 들뜬 어린아이가 되곤 했다.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이곳에 이르기까지의 생각보다 많은 이들과 함께 걸었다. 비록 지금 그들과 함께 하진 않지만 슬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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