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 나가기 시작
빠름을 지향하는 사회 속에서 느림은 다른 방식이 아닌 뒤처짐이었다. 걸음마저도 빠른 나는 느림의 가치를 모르고 살았다. 그저 빠른 것이 더 좋은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느림을 연습해보기로 했다. 일단 먹는 것부터! 이를테면 커피를 내려 먹거나 차를 우려먹는 일이다.
반들반들하게 기름이 올라온 원두를 수동 블렌더에 넣고, 드르륵드르륵. 원두를 갈기부터 쉽지 않다. 설거지같이 조금 귀찮은 정도의 노동이랄까. 한몇 분 돌리다 보면 눈처럼 쌓인 원두 가루와 은은하게 풍기는 향이 잠깐의 노동을 할만했음을 일깨워준다. 전기 포트에서 물을 끓이는 소리가 들려올 때 드리퍼와 드립 서버, 종이필터를 준비한다. 드립 전용 주전자에 끓인 물을 담고 드리퍼와 드립 서버에 물을 부어 따뜻하게 데운다. 종이필터에 갈아놓은 원두를 담고 툭툭 쳐가며 펑펑하게 담는다. 그리고 물을 원두 중앙부터 원을 그리며 부어주고 뜸을 들인다. 이때 중앙이 살짝 부풀어 오르는데 이를 커피빵이라고 부른다. 원두가 신선할 때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고 한다. 커피빵이 올라오는 걸 보면 잘하고 있다고 칭찬받는 기분이다. 잠시 기다려주고, 2~3분간 조금씩 물을 부어주며 커피를 내린다. 아침에 일어나 길게는 30분 정도 커피를 내리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한껏 여유로운 사람이 된 듯 어깨가 으쓱해진다. (돈이 많아서 여유롭다기 보단 이런 생활을 오래 해온 듯 의젓한 어른이 된 느낌이다. ) 진한 갈색빛 커피를 머그잔에 따를 때 묘한 뿌듯함을 느끼며 커피 한잔과 함께 일을 시작한다.
이런 느림 연습은 잠시 생각을 멈추게 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어준다. 요즘 집에서 일하면서 생긴 모닝 루틴으로, 아침을 맞이하는데 아주 좋다. 집안을 채우는 커피 향에도 카페인이 있는 걸까. 너무 늘어지지도 않게 적당한 긴장감을 주며 일하기 좋은, 좀 더 맑은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다. 때론 차를 우리 기도 하는데 또 다른 기분을 내준다. 뭐랄까, 가볍우면서 개운한 느낌을 준달까. 출근할 때만 해도 지옥 같던 아침을 요즘은 다르게 보내며, 그때의 기억을 흘려보내고 있다. 이 순간을 감사하며,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다시 현재를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