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대하여
*김동식 작가의 소설 <회색 인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연말이 되면 돌아오는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가 있다. 그중 하나는 사진 정리. 작년에도 어김없이 사진을 구경하기 위해 카메라와 앨범이 들어 있는 서랍장을 열었다가, 아주 오래전에 쓴 디지털카메라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곧바로 전원을 켜고는 버튼을 눌러 사진을 빠르게 넘기는데, 우리 동네에 눈이 아주 많이 내렸을 때 찍은 사진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쌓여 하얗게 변한 땅바닥에 누워 눈천사를 만들던 웃음 많은 아이의 사진.
그래, 이건 분명 나였다. ‘나도 이렇게 꺄르르 소리가 날 것처럼 환히 웃었던 적이 있었지’ 생각하며, 그렇게 잠시 옛날 생각에 잠겼더랬다. 그 옛날 하춘화 선생님처럼 ‘세월이 야속해’를 외치며….
사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눈이 오면 신나게 뛰어놀았던 기억이 있다. 문득 창밖을 봤는데 눈이 펑펑 오던 날, 잠옷에 외투만 걸치고 뛰쳐나가 바닥에 하트를 그리고, 작게 눈사람도 만들며 눈을 구경하던 때가 분명 있었다. 그때만큼은 다른 사람이 쳐다보든 말든 아이처럼 즐기면서 그동안의 근심을 아주 잠시 잊어버리기도 했는데….
그런데 이번 겨울은? 눈이 오면 좋은 건 잠깐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눈 밟은 신발로 걸어다니면 바닥이 더러워지겠지’, ‘출근하면 내가 저걸 다 치워야겠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어른’이라는 단어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어 가면서부터 겨울만 되면 떠오르는 아쉬운 점을 말해 보자면, 이제는 길을 걷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에 뛰어들어 마음껏 눈을 즐길 용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남의 눈을 신경 쓰느라 눈앞의 눈을 멀리하는 탁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누군가는 ‘성인에게 이런 건 당연히 지녀야 할 자제력 아닌가? 그 나이 먹고 그런 자제력도 없으면 안 되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쯤은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눈에 대한 낭만과 동심이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조금씩 흐려지는 게 눈에 보이는 순간들이 아쉬울 뿐이다.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나의 동심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난 평소와 다를 바 없이 1년을 지냈는데, 돌이켜보니 낭만도 다 죽어 있었다. 이제는 내리는 눈을 보면 못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눈은 하늘에서 떨어질 때는 희고 깨끗한 결정으로 내려오는데, 땅에 닿으면 금세 축축해지고 색도 탁해진다.
눈 주제에 그 성질은 또 왜 이리 사람과 닮은 건지. 모든 사람도 흰 눈처럼 마냥 맑았을 시절이 분명 있었을 텐데, 각자의 삶을 어떻게든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이리저리 밟혀 질퍽질퍽해진 눈처럼 어둡게 변해 버린다. 세월이 흐르니 눈은 예쁜 쓰레기라는 말도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 나 자신이 내심 안타까워지는 겨울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마치, 회색이 된 듯했다. 그것이 흩날리는 돌가루 때문인지, 암울한 현실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무표정한 회색 얼굴로 하루하루를 억지로 살아가고 있었다."
최근에 읽은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에 나오는 부분이다. 지저(지하) 세계 인간들이 문화를 하등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지상 인간들을 땅속으로 끌어들였고, 이들이 지상 인간들에게 지저 세계의 땅을 파는 노동을 시킴으로써 지상 인간들이 점점 생기를 잃어 가는 내용. 비현실적이지만 우리가 사는 현실에 대입해서 읽어 보아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에는 벽에 그림을 그리며 노래를 부르는 여자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모두가 노동하며 힘겹게 살아가는 지저에서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노래나 부르는 여자를 미친 사람 취급 했다. 모두가 욕하고, 돌을 던지면서까지 이 여자를 말리려 했지만 여자는 말을 듣지 않았다.
여자는 언제나 돌을 맞아도 꿋꿋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렸다. 알고 보니 이 여자의 직업은 화가였고, 그녀는 이곳을 탈출한다면 지저 세계에서 인간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전부 그려 세상에 알릴 수 있다고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 여자를 욕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언젠가 한 사람이라도 지상으로 올라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릴 수 있기를 바라며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 낸다.
조금 전 위에서 눈과 인간의 성질이 비슷하다고 했던가? 지금부터는 그 말을 잠시 넣어 두고 싶다. 바닥에 떨어진 눈은 곧 사람들과 자동차 바퀴에 밟혀 검어지겠지만, 인간 세상에 떨어진 나는 밟힌 눈처럼 어두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바닥에 납작 깔려 버린 까만 눈, 삶을 포기한 듯이 녹아내리는 그런 까만 눈처럼 살고 싶은 마음은 절대 없다!
그래서일까. 소설을 다 읽은 후, 검고 질퍽거리는 사람이 될 바에는 차라리 그보다 덜 오염된 회색 인간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실 그렇지 않나. 땅굴의 돌가루로 둘러싸인 회색 인간과 사회생활의 먼지로 둘러싸인 나, 당장 지금 비교해 보아도 둘은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차피 현실에서까지 회색 인간이 될 운명이라면, 그렇다면… 이제는 지상 세계의 회색 인간도 소설 속 지저 세계의 회색 인간들처럼 생각의 전환을 시도해 보아야 할 때였다.
너무 하얗기만 하면 때가 묻을까 봐 겁나서 남들이 뛰어드는 눈밭에 함께 뛰어들지도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까매지면 본질을 잃기 쉽다. 당장 바닥에서 검게 물든 눈만 봐도 이게 진흙인지 눈인지도 모를 만큼 못나게 녹아 있는데. 이대로 회색 인간처럼 사는 것... 어쩌면 나쁘지 않을지도?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이라면 세상을 조금이라도 경험해 보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을 경험하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을 여러분이 혹시 이 글을 읽으며 자신도 탁한 회색 인간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비록 우리가 세상 맑고 순수한 아기로 태어났지만 지금은 세상의 온갖 풍파를 맞아 온 덕에 먼지가 가득 묻은 꼬질한 회색 인간이 되었대도, 그렇대도 뭐 어떤가.
적어도 회색 인간은 남들과 함께 눈밭에 뛰어들 수 있다. 남의 눈을 신경 쓰다가도, ‘지금도 충분히 때 묻은 몸인데 여기서 더 묻혀 봤자지. 뭐 어때!’라는 마음가짐으로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지 않나. 회색 인간은 그 몸이 어둡고 눅눅하게 녹아 버리기 전까지는 무엇이든 더 경험해 볼 수 있다. 마냥 흰 것보다 어느 정도 꼬질한 게 이럴 때는 또 도움이 된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묻어도, 사람들은 회색이 아니었다."
여자의 그림과 노래를 시작으로, <회색 인간>의 회색 인간들은 문화를 다시 소중히 여기게 되고, 이를 통해 그들의 인간다운 면을 되찾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현실의 회색 인간인 우리들은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잊고 살았던 낭만을 되찾을 수 있을까. 겨울이 가기 전에 명확한 답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작년에도 회색이었고, 어차피 태초의 흰색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올해도 어김없이 회색 인간으로 남겠지만, 올해는 남의 눈을 덜 신경 쓰는 용감한 회색 인간이 되어 보고 싶다는 소소한 목표가 생겼다.
우리의 겉모습은 먼지 묻은 회색일지라도 내면은 컬러풀하게 살아가길 바라며, 올 한 해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소설 속 노래를 부르던 여인처럼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꿋꿋이 펼칠 수 있길! 이곳에서 묵묵히 응원해 보려 한다.
-지상의 또 다른 회색 인간이-
체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