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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Jun 23. 2021

어른다운 어른과의 대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

157일째, 서른

어른다운 어른과 대화하면 몰랐던 마음의 소리를 듣게 된다. 문제에 부닥쳤을 때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상식적인 어른을 찾아간다. 준비한 말은 없다. 그저 얼기설기 설익은 말을 뱉어내면 맞은 편에 앉은 어른은 온몸으로 들을 뿐이다. 그녀의 따뜻한 눈빛과 나를 따라 움직이는 눈동자는 말한다. “너는 안전해. 그리고 이곳은 안전해”라고. 나는 거기에 녹차 티백을 따뜻한 물에 담그면 연둣빛이 퍼지는 것처럼 금세 풀어져서는, 더는 찻물이 우러나오지 않을 때까지 조잘댄다. 오늘 풀어헤친 보따리는 내 서른 사태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대한 것이었다. 지혜로운 어른은 진단과 조언보다 경청하고 질문한다. 질문은 진위를 따지는 종류의 그것이 아니고 이야기꾼의 심연에 있는 것을 부드럽게 떠오르게 하는 그런 것이다. 어른이 뜰채로 손수 그 마음의 소리를 뜨지 않는다. 내가 어느새 도동실 떠오른 마음의 소리를 알아챈다. 그 한 번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황홀한지 모른다. 

 나의 서른 사태는 일과 연애, 우정, 신념과 태도, 의식주, 길을 걷는 것, 숨을 쉬는 것 그러니까 모든 것을 혼란하게 했다. 말이 장황하지만 결국 혼란해서 괴롭다는 얘기였다. 어른은 묻는다. 

“어떻게 살고 싶을까?

“나는요, 세상과 내가 상관있었으면 해요. 사람들과 내가 관계있었으면 하구요, 좋은 쪽으로요...”

잠시 멈추지도 않고 튀어나온 대답이었다. 내 서른 사태는 나와 세상이 아무 상관 없다는 것과 사람들과 아무 관계 없다는 데서 가장 큰 괴로움을 주는 것이로구나. 그러니까, 나는 참말로 세상과 사람들을 사랑하는구나. 서른 사태의 뇌관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당장 뇌관을 제거해 폭탄을 무용지물 만들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니지만 희미하게나마 해결책의 빛을 본 것 같았다. 오늘 어른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집에서 이 블랙홀 같은 혼란에 정신없이 떠돌고 있었겠지. 이것이 어른을 만나는 백 가지 유익 중 한 가지다. 깨달음에 한껏 흥분한 어린 어른은 콧김을 쉭쉭 내쉬며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맞은 편 어른은 그것이 재밌다는 듯 미소를 띠고 지켜본다. 이 진풍경을 구경하는 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어른이 어린 어른을 만나는 이유 중 하나다. 재밌그든!

오늘의 대화는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진리에 이르기 위해서 대화상대자와 대화한 그 기술과 다르지 않다. 대화상대자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결과는 같으나 다만 나의 어른은 소크라테스처럼 대화상대자를 혼란한 아포리아에 빠지게 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는 든든한 지지와 응원을 해주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우리의 대화는 진리에 이르는 숭고하고 고상한 목적이 아니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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