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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일당 Jul 08. 2021

생각이 많을 때는 종이접기를

위대한 종이 바구니에게 박수를!

158일째, 서른    

지익- 

 ‘왜 이리 답답할까’ 

꾹꾹-

 ‘대화가 안 되는 느낌’ 

네모 접기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꾹꾹 

 ‘어디서부터 꼬인거지’ 

대문 접기 

 ‘그때부터였던가’ 

펴기...     

 생각이 많다면 종이접기를 추천한다. 종이접기는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 갑자기 생각이 뿅 하고 사라지게 하는 마법이 아닌 녹진한 놀이에 가까운 방식으로 도움을 준다. 손으로는 종이를 접고 동시에 머리는 생각을 하는데, 이게 환상의 콤비다. 종이를 반으로 포갤 때 조금이라도 종이가 튀어나오지 않고 딱 맞물리게 접으려고 눈과 귀는 잠시지만 엄청난 집중력과 예민한 통감을 가진다. 그때 생각은 잠깐 멈춘다. 이가 딱 맞게 선을 맞춰 접고 나면 굳히기가 들어간다. 어느 손가락이든 꾹꾹 눌러주기만 하면 되는데 긴장됐던 손이 이때 풀어진다. 손의 이완된 에너지를 응수라도 하는 것처럼 이때 생각은 속속들이 확장되고 깊어진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신체와 정신이 놀음 한판을 벌인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사람은 동시에 생각과 종이접기를 할 수 있을지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도 숨 차는 지독한 모노태스킹인 나는 생각과 종이접기를 결코 동시에 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멀티태스킹과 모노태스킹의 차이는 일과 다른 일 사이 전환에 걸리는 시간 아닐까? 그런 면에서 모두에게 유익할 거란 생각이 든다. 생각하고 있는 머리의 주인이 나인 것도 까무룩 잊고 배은망덕한 생각이 나를 집어삼킬 때 종이를 접는 동안 머리는 몇 초 동안이나마 쉬는 시간을 가진다. 내가 생각의 소용돌이에 완전히 휩싸여서 조난하지 않도록 하는데 충분한 시간이다. 그래서 생각과 종이접기는 합이 잘 맞다. 

 마침내 종이 접기 완성! 2차원 평면이었던 종이는 한 차원을 뛰어넘어 어엿한 종이 바구니가 되었다. 하던 생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자기 뿌듯함. 종이접기는 좋겠다. 하라는 대로 따라 접으면 완성이 있어서, 거기다 완성도와 성취감도 높다. 생각은 영 그렇지가 않다. 잘 생각하는 법도 따로 없고 있다 해도 마음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생각하는 시간과 완성과 성취도에 어떤 연관성도 없다. 그럼에도 어쩐지 종이접기와 생각은 닮은 구석이 있다. 위대한 종이 바구니를 접기 위해서는 13센티미터 종이를 요리조리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는데, 접을 땐 왜 접는지 모르는 무수한 접기선들이 있다. 접기선을 만들 때는 뭐가 뭔지 몰라도 종이접기가 완성되고 보면 그 접기선은 바구니가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선이다. 접혀 있든 희미한 선으로만 나타나 있든 완성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그런 선. 생각도 이 접기선 같다고 믿는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내가 하는 생각들이 종이 바구니의 선을 만드는 일이라고. 복잡다단한 생각만으로도 수고로운데 내가 하는 생각이 쓸데없다고 홑 대한 데 쓴 생각마저도 접기선이다. 근사한 종이 바구니를 완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생각들. 그래도 가끔은 접지 않아도 될 텐데 생각은 아직 그럴 생각이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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