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일당 May 29. 2021

제 3의 세계 기록

음력 엄마 생일

 149일째 서른.

오늘이 음력 엄마 생일이라고 다이어리에 적혀 있다. 엄마 태어났을 적에는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래서 엄마 진짜 나이는 63년생 아니면 64년생인가 그렇다. 주민등록번호 앞자리 두 글자나 출생연도 둘 중에 하나만 알면 헷갈리지 않을 텐데, 나는 매년 헷갈린다. 집을 나서면서 전화를 할까 하다 말았다. 돈을 부쳐줘야 하나, 이미 도착하면 생일이 지났겠지만 선물을 골라 택배를 보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전에 보니 인터넷 쇼핑몰에 등산 브랜드가 세일하던데 아직도 하고 있으려나. 어느 쪽이든 정해야 엄마한테 전화했을 때 말문을 열고 이어나갈 수 있다. 어색하고 멋쩍은 인사를 하려니 오그라든 손가락이 펴질 기미가 안 보인다. 그래, 있다 점심 든든히 먹고 전화해 보지 뭐. 


 쌀밥에 차돌 된장찌개는 목구멍에 슥슥 잘 넘어가던데, 엄마한테 전화하는 일은 전화기 드는 일부터 왜 이리 꺼슬꺼슬할까. 더 늦으면 섭섭해할 거야. 그래도 해 떠 있을 때 해야지. 엄마가 오늘 쉬는 날인가, 일하고 있나? 최근 통화 목록과 부재중 목록을 크게 슥, 스윽 엄지로 두 번 쓸어내려도 엄마에게 전화할 수 없다. 연락처 목록에 들어가서 '우리'를 입력하면 '우리 집 엄마'가 뜬다. 톡, 하고 부러 더 가볍게 터치한다. 신호음이 가고 텁텁한 입맛을 다신다. 일하는 중인가 보다. 엄마한테 부재중 전화를 남긴 게 공을 상대방 진영에 넘긴 것과 같은 잠깐의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엄마한테 십만 원, 이십만 원 그보다 더 많은 돈을 턱턱 용돈 쓰시라고 줄 수 있는 딸은 못 될 거 같아. 대신에 엄마랑 카페 가서 커피 마시고 영화관도 가는 딸 될게. 그때는 용돈 많이 주는 딸은 반드시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십 대 중반, 엄마랑 상의도 없이 나의 딸 역할의 임계점을 혼자 정했다. 그런데 지금은 용돈도 안 주고 시간도 없는 딸이 됐다. 나는 인간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고, 그 누구에는 엄마는 물론이고 본인까지 포함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내 코가 석 자라는 쉬운 말을 자신에게 오랜 시간 납득시켜야 했다. 그래서 위태롭고 버겁긴 해도 혼자 중력의 무게를 이고 다른 지역에 홀로 3년 차 가구주를 지키고 있는 나를 어여삐 여겼는데, 오늘따라 비루하기 짝이 없다. 


해가 지기 한 시간 삼십사 분 전 넘겼던 공이 내 쪽으로 넘어왔다. 다이어리에 표시했던 음력 엄마 생일은 진짜였다. 놀랍게도 엄마는 자신의 음력 생일을 기억하는 딸을 놀라워했다. 아직도 돈을 보낼지, 선물을 부칠지 정하지 못한 나는 당연히 깔끔하게 준비된 대사를 치지 못했다. 뭐 필요한 거 없냐, 케이크라도 먹게 돈을 부칠까 따위의 말을 하나도 멋대가리 없이 장황하게 붙였다. 엄마는 먼 곳에 있는 내가 잘 있으면 족하다고, 갑자기 필요한 걸 물으니 떠오르지 않는다고, 생일을 알고 전화해준 거로 됐다고 한다.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뻣뻣한 종이로 만든 인간을 아무렇게나 구겨서 마침내 뭉치가 된 기분이다. 아 엄마, 엄마는 벌써 납득이 됐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