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도망친 임상심리사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애착 유형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지 상담을 할 때 다수의 내담자들이 이런 말을 한다. "제가 불안형이라서 헤어지지 못하는 걸 까요?" "선생님 저의 애착 유형이 문제 인것 같아요" 라며 나르시시스트 또는 인간관계에서의 문제가 되는 자신의 애착 유형에 대한 한참을 얘기한다.
언 듯 자기 객관화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자신이 특정 애착 유형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애착 유형은 갈등 상황에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수단으로 알아보는 것이지 특정 애착 유형을 가진 자신을 탓하기 위해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유형이든 자신의 취약점과 구멍이 채워진다면 건강하지 못한 관계라고 할지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안정 애착 유형이라 할지라도...
안정 애착 유형
보통 안정형 애착 유형이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균형 잡히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기반으로 한 소통을 잘하는 유형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안정형 또한 절대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애착 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안정 애착 유형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패턴이 건강하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를 완벽하게 만들 수는 없다. 어떤 관계에서는 집착을 할 수도 회피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그 정도가 심하지 않고, 일정 선을 넘으며 관계를 잘 정리한다. 또한 문제가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하지만 안정형이 모든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만능키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즉, 건강한 관계를 위해서 안정 애착유형이 되어 가는 방향성이 목적인 것이지, 안정 애착 유형이기 때문에 모든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점을 염두에 두고 나르시시트와의 관계에서 안정형이라도 취약점이나 구멍이 채워지면 어떠한 패턴을 보이는지 알아보자.
안정형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신뢰하며, 친밀한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가 처음에 보여주는 강한 매력과 자신감에 안정형 또한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준다. 안정형은 상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믿고,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의 과도한 애정 표현이나 드라마틱한 이상적인 관계를 약속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나르시시스트의 애정 공세를 긍정적으로 해석하지만, 점차 상대의 행동에서 불규칙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안정형은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상대를 이해하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정형은 문제가 발생한 경우 관계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게 된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문제를 회피하지도 그렇다고 무작정 굴복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계의 개선을 위한 대화나 해결방안에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같은 문제가 계속 발생한다면 안정형들은 결국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이때 나르시시스트가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거나, 이 관계를 더 노력하면 개설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만약 여기서 흔들린다면, 이제부터 안정형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감정적으로 배려하게 된다.
타인과 자신을 신뢰하는 안정형에게는 나르시시스트의 변덕스러운 행동이 의외로 ‘이 관계를 더 노력하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후버링을 통해 일시적인 보상을 주고, 안정형은 그 순간을 통해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안정형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기준을 점점 낮추고, 자기희생을 감수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안정형의 구멍이다.
프랑스의 심리학자 크리스텔 프티콜랭(Christel Petitcollin)의 저서 <당신의 사람 보는 눈이 없군요>에서 '다른 건 몰라도 절대 구원자 역할을 하지 마라'라고 했는데, 안정형이 ‘그 구원자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안정형은 타인을 이해하고 보살피는 능력이 뛰어나며, 갈등이 생겼을 때 해결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러한 안정형의 특성을 이용하여 자신의 욕구를 채운다. 나르시시스트는 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해결하고자 하는 안정형의 노력으로 통제력을 확인하고 떠나지 못하게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반응(눈물, 애원, 분노 등)을 보이며 안정형을 다시 끌어들인다.
언듯 보면, 희생하는 모습이 불안형과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조금 다르다. 불안형의 경우 무조적이고 절대적으로 희생하면서 의존하는 것이고, 안정형의 경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에게 의지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구원자의 역할을 하면서 나르시시스트의 심리조정이나 가스라이팅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그 선도 사라진다. 안정형이 점점 감정적으로 소모되면 나르시시스트는 안정형이 자신을 떠날 가능성을 보고 극단적인 감정적 조작(애원, 위협, 피해자 코스프레 등)을 사용하게 된다.
결국 안정형은 자신이 원래 지니고 있던 안정애착 유형의 특성이 변질되어 버린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가 오래 지속될수록, 안정형은 ‘내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며, 점점 구원자의 역할에 몰입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의 감정 기복에 맞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는 패턴에 익숙해지고, 결국 이 관계 자체를 애착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안정형은 자신의 본래 특성을 잃고, 심리적으로 피폐해진다. 처음에는 상대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자신이 감정적으로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안정형은 점차 나르시시스트의 요구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키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에 길들여지게 된다.
결국 구원자의 역할이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그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자의 역할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안정감을 느끼는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