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사의 환자일기 시리즈
이번 주 부터는 매주 올리는 <동네의사의 환자일기>를 좀 긴 호흡으로 쓰려고 합니다.
이분과 최근 9개월 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개인적인 고충과 만성통증으로 하루에도 열 번씩 넘어져 무릎이 성한 날이 없었죠. 목디스크, 고관절통증, 꼬리뼈통증, 섬유근육통을 비롯한 만성통증, 우울증, 자살사고와 불명열로 정말이지 곧 죽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환자는 어느 과에서도 제대로 치료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은 정신과 병동에 입원을 시킨 상태에서 강력한 약물치료로 자살사고를 억제한 상태에서 통증치료를 해야 하는데 어떤 정신과에서도 위에서 열거한 저런 다양한 통증을 케어하긴 어렵죠. 그렇다고 통증클리닉이나 정형외과에서 통증주사나 수술로 일부의 통증은 해결할 수 있겠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이런 환자들은 대체로 정형외과, 통증의학과, 신경과, 류마티스내과, 재활의학과... 한의원... 결국은 정신과로 가게 됩니다. 강력한 약물치료로 겨우겨우 연명하며 버티는 환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약 20년 전 잃어버린 봄꽃이라는 환자가 떠올랐습니다. 나는 그 환자분을 보내면서 하늘이 내게 준 환자는 다시는 놓치지 않으리라고 하늘과 약속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나는 더욱 집중하고 더욱 연결되어야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마음으로 9개월간 치료를 해왔습니다.
감정이라는 야생마에 올라탄 이 환자분과의 이야기는 단편으로 끝나기는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습니다. 환자분도 단순히 통증을 치료한 것 뿐 아니라 주체할 수 없었던 감정에 끌려다니지 않고 떠올라서 그 감정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성통증 환자분들을 치료하면서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몇 주 전 제가 쓴 '다정한 인류, 사피엔스'에 대한 글을 읽고 환자분이 제게 이야기 했습니다.
https://blog.naver.com/heart-nomad/223476589866
가장 다정했던 사피엔스 : 예수를 바라보는 진화론적 관점
"사피엔스는 정말 다정했군요.
마치 갈 곳 없어 바탕화면에 떠도는
파일들을 품어주는 기타 폴더처럼...^^"
원장님도 기타폴더^^
기타폴더
기타폴더...
그 말이 참 마음에 와닿아서 즉석에서 답글을 달았던 것을 공유합니다.
앞으로는 이 환자분과의 첫 만남과 지금까지의 파란만장한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환자분 표현으로는 "대환장파티에서 지구별 소풍으로..." 변신해가는 9개월 간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모두가 바라는 '그것 其'이 있다.
흔히 말하는 잇it템이 그것 其이다.
젊은 나이에 파이어족이 되고
몰디브에서 모히또 한 잔 때리는 사진을
인스타에 올리고 부러워하는 댓글들을
훓어보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멋진 배우자를 맞아
화려한 웨딩사진을 찍고
큰 집에다 하차감 쩌는 자동차를 몰고
동창회에 나타난다.
풀소유로 원하는 것은
**똥이든 된장이든 살 수 있고
원하는 곳에는 언제든 갈 수 있다.
그것 其이다.
바로 그것 其이다.
능력이 모자라서 그렇지
부모를 잘 못만나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다.
바로 그것 其이다.
모두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리로 달려간다.
공부도 그리로 달려가는 길,
인맥도 그리로 달려가는 길,
정치도 종교도...
심지어 가족조차
그리로 달려가라고
성화를 부리기도 한다.
이것이 그것 其의 길이다.
인생이란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는데
나 혼자 우두커니 서있다.
다들 앞다투어 그리로 달려가는데
나만 뒤돌아서 출발점을 향해 서 있는 듯하다.
난 그것 외의 무엇이다.
그래서 나는 기타 其他가 되었다.
이미 지나쳐 멀어져간 사람들의 바쁜 뒷모습...
저만치서 뛰어 오는 사람들의 벅찬 숨소리...
모두들 그것 其이 되려 뛰는데
나는 멈춰서 있는 其他.
실눈을 뜨고 보니 저만치
또 다른 其他가 보인다.
반가운 웃음이 절로 난다.
말없이 응원을 보낸다.
외롭던 其他가
또 다른 其他에게...
아름다운 지구별 여행을 함께 하는 길동무들 모두들 행복하길...
생명 있는 모든 것들
비록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것 외의 모두,
수많으 기타其他들에게도
이 지구별 소풍이 평화로운 여정이 되기를...
동네의사의 환자일기, 세 번째 환자(1)
#행복한재활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