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사의 환자일기, 두 번째 이야기
지난번 둘째 환자분의 이야기에 대한 속편입니다. 지난주는 이 분과의 해피엔딩의 스토리를 썼습니다. 그러나 작년 이 분의 치료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기약 없이 끝날 때는 말 그대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혼돈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행복한 결말은 저의 노력이나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 것뿐입니다. 제 실력으로는 다 해낼 수 없는 끝지점이 있습니다. 그 지점에서는 그저 하늘을 우러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불안에 젖어서
본인의 생각대로 치료를 받았다 말았다 하는
환자분이 있다.
벌써 3개월째 물도 삼키지 못해
큰 병원을 전전하다가 온갖 검사를 다 하고도
제대로 된 진단을 못 받고 수액치료로 겨우
버티며 살던 분이다.
유언장도 쓰고 재산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가
어찌 저희 병원을 알게 되어 오셨다.
나에게 자율신경 치료를 다섯 번쯤 받고
이제는 끓인 누룽지 정도 먹게 되어
지난주엔 이젠 살았다며 좋아하셨다.
이번 주엔 뉴케어를 줄이고
죽과 누룽지를 먹기로 했는데
어제 밥을 몇 숟가락 먹고
다시 예전 증상이 나타나서
거의 공황상태로 이어져 병원을
오지 않으셨다.
밤에 퇴근하면서 남편분과 통화를 했다.
남편)
"다시 죽겠다고 야단법석이 나서 하루종일 집사람 옆에서 꼼짝을 못 하고 있습니다."
환자분을 바꿔달라 해서 얘기를 들었다.
내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그렇게 불안한 느낌은 아니었다.
나)
OO님 머릿속에 병아리 한 마리가 살고 있어요.
즉석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도토리가 머리 위에 떨어졌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고 소리 지르며
쫓아다니던 병아리 이야기 아시죠?”
OO님이 웃었다.
다행이다.
‘휴~ 살았다.’
급박한 상황에서 만성통증 환자가 웃으면 일단 급한 불은 끈 것이다.
나)
“OO님 머릿속에 겁이 많고 불안한 병아리가
한 마리 돌아다니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OO님은 병아리가 아니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OO님 속에서
자리 잡고 살아온 병아리의 목소리를
OO님 자기 목소리로 착각하시면 안 돼요.”
나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말로
이 비극적인 스토리의 흐름을 바꾸는 것을
확인해야만 했다.
위험한 행동을 바꾸는 것보다
비극적인 스토리를 만드는 생각을 바꾸는 것보다
단어 하나만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 병아리는 워낙 겁이 많고 불안해서 조금만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떠들며 돌아다닐 거예요.
다음에 또 그럴 거예요.
그럴 땐 어떻게 하시겠어요?”
OO님)
그땐 병아리를 진정시켜 줘야죠.
나)
“그래요. 그땐 뜻밖의 그 일이 하늘이
무너지는 게 아니라, 도토리가 떨어진 것임을
알려줘야 해요.
OO님이 오늘 느낀 그 불안은 OO님의 목소리가 아니에요.
그 조그만 병아리가 떠드는 소리예요.
담번에 또 그런 소리가 속에서 올라오면
이 녀석이 또 제대로 살펴보지도 않고 떠드는구나!
어디론가 정신없이 치닫는 생각을 멈추고
알아차리고 달래주시면 돼요.”
OO님)
“네, 꼭 그렇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나)
“그리고 OO님은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남편을 만나셨으니 몸은 좀 힘들어도 큰
축복을 확인하는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라고하고 마무리했다.
남편분이 전화를 다시 받았다.
남편)
"몇 달 만에 아내가 웃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
"남편분께서 제 환자를 든든하게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분을 달래고 안심시켜서 치료하려면
환자를 3~4명 치료하는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간다.
온갖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을 다 다녀보고
온 분이라 어디 보낼 곳도 마땅치 않다.
나의 입장만 생각하면
우리 병원을 그만 오시는 것이 좋다.
어떤 날은
“왜 내가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분을 한 번 진료하려면
우리 데스크 직원들이나 간호팀원들이
오래 기다리느라 화가 난 다른 환자분들을 달래느라
이만저만 힘든 것이 아니다.
난감한 얼굴로 자꾸 나에게 재촉한다.
나의 이런 진료스타일 때문에
그렇게 놓쳐버린 환자분들이 버스 몇몇 대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분들은 갈 데가 있어서 가셨지만
이 분은 갈 데가 없으니…
그럴 때 내가 이 환자분을 대하는 마음이
어쩌면 깨달은 성인들이
나와 같은 어리석은 사람을
대할 때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연민…
높은 지혜와 깊은 통찰을 갖고도
평범한 언어로 연민을 담아 말해내야 하는 어려움.
그것이 깨달은 분들의 사정이 아닐까?
그분 사정이 안타까워
도리어 내가 약간 비굴모드 내지는
달래야 하는 상황…
그런다고 그분이 제 속을 다 알진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그분이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고통이 없기를…
내가 만나는 모든 생명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삶을 꼬옥 안아주기를…
매 순간 즐거울 수는 없어도
매 순간 내 속에서 올라오는 저항을 알아차리길…
그 저항 또한 기억에 사로잡힌 피해자임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침입니다.
Embrace every single moment in front of you!
That’s the way LIFE goes.
동네의사의 환자일기_두 번째 환자 편(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