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9)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9)
근전도 검사의 비밀 - 전기 고문 아닌가!!!
아내는 경기도 이천에서 동생과 함께 오른쪽 몸을 잘 쓰실 수 없는 장모님을 모시다가 내가 2년차가 되어 퇴근이라는 것이 생길 때 쯤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드디어 시작과 마침이 있는 병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재활의학과 2년차가 되면 신경근전도 검사라는 업무를 맡게 된다.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신경의 기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 가장 객관적으로 신경의 기능을 확인하는 것이 신경근전도 검사이다.
물론 MRI로 신경의 모양을 볼 수도 있지만 뇌나 척추신경의 큰 부위는 대체적인 파악이 가능하지만 말초신경의 신경가닥을 MRI로 확실하게 다 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모양이 정상처럼 보여도 기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기에 재활의학과에서는 신경근전도검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문제는 신경근전도 검사가 매우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검사라는 사실이다. 내가 보기에는 골수검사 다음으로 불편한 검사가 아닌가 싶다. 손발이 저리거나 목이나 허리가 아픈데 팔,다리까지 뻗어나가는 통증이 있는 분들부터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분들까지 매우 다양한 환자들에게 근전도검사 를 한다.
우선 신경의 속도를 재야하는데 신경에다가 전기 자극을 주어서 신경의 속도가 느려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전기 자극을 줄 때는 마치 전기고문을 하는 것 같다. 내 손에다가도 몇 번 해 보았는데 점심 먹은 뒤에 노곤할 때 하면 잠이 싹 달아날 정도로 짜릿하다. 좀 쎄게 하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다.
그런 다음에는 근육에 이상이 있는지 확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근육을 움직이는 운동신경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고 근육자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확인하려면 바늘로 찔러야 한다. 바늘이 근육의 전기신호를 감지해서 그래프로 나타내는데 이 그래프의 모양으로 어떤 병인지를 판단한다. 이것 또한 여기 저기 근육을 깊숙하게 찔러야 해서 상당히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검사이다.
그렇지만 신경과 근육의 문제를 확인하는데 아직까지는 더 좋은 방법이 없으니 상당히 중요한 검사인 것도 사실이다. 2년 차 초반에는 테크닉도 숙지해야하고 깊이 있는 이론적인 바탕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하니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더 부담스러운 것은 검사하는 내내 환자를 불편하게 해가며 검사를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환자분들을 편안하게 보는 것은 2년차 근전도검사를 하는 시간에 환자들을 어떻게든 마지막까지 검사를 마치도록 하면서 쌓인 노하우 덕분이 아닌가 싶다.
불편한 검사를 하면서 어떻게 긴장을 풀어 줄까?
손으로는 전기자극을 하지만 끊임없이 환자분과 뭔가 대화를 나눠야 했다. 그렇게라도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야 전기자극이 견딜만 하기 때문이었다. 드물긴 하지만 도저히 검사를 못받겠다며 중도에 검사를 중단하려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긴장을 풀도록 이 얘기, 저 얘기 하면서 검사를 진행했다.
대전선병원 은 충청도 인근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도 꽤 많았다. 농사를 짓던 흙이 잔뜩 묻은 신발에 낡은 양말을 신고 오시는 할아버지들은 쌀쌀한 날씨에 발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경우가 많았다.
근전도검사는 손발이 차가우면 신경속도가 느리게 나오기 때문에 검사에 오류가 생기기 쉽고 검사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그래서 나는 또 궁리하게 되었다.
어떻게 검사도 빨리 끝나고 할아버지들을 덜 불편하게 할까?
내가 검사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보니까 문 앞에 검사하러 올 때는 발을 깨끗하게 하고 오라는 글이 종이에 적혀져 있었다. 그러나 종종 발에 흙이랑 거친 각질이 있어서 검사가 어려울 것 같은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물티슈로 닦아 드렸다. 그런데 물티슈로 흙은 닦을 수 있었지만 발이 따뜻해 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물리치료실에서 적외선램프를 빌려와서 발에다 쬐어 드렸다. 그런데 발 온도를 올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만족한 환자들은 끝까지 검사를 잘 마치셨다.
그래서 결국 세숫대야를 가져와서 검사실 구석에 있는 수도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서 할아버지들 발을 씻어 드렸다. 그러고는 따뜻한 수건으로 1~2분 정도 감싸고만 있어도 온기가 돌았다. 검사가 평균 30분 정도 걸리는데 발냄새를 맡으며 하지 않아도 되고 발이 따뜻해져서 검사결과도 정확해지고, 검사시간도 짧아진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의사가 직접 발을 씻겨 드리고 검사를 하면 좋은 점은 상당히 불편한 이 검사를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하겠다는 분들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
5분 정도만 시간을 들이면 모든 과정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예전에 장모님이 명절에 집에 오시면 꼭 발을 씻겨 드리곤 했는데 참 만족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러고 보니 滿!足!이란 발이 가득찬 느낌, 흡족한 느낌이다.
발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면, 즉 만족하면 그런 힘든 검사도 환자들이 잘 참아내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니 나도 좋고 환자도 좋은 정말 만족스런 아이디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