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10)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10)
좀 버거운 날이었다.
낮엔 전공의 수련생활에 야간에는 응급실 당직을 며칠 연달아 섰다. 응급환자가 많이 없는 날은 간간이 눈을 붙일 수 있지만 환자가 좀 많은 날은 꼬박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었다.
신종플루가 유행하던 때였는데 열이 나면서 감기 증상이 있는 환자들이 밤새 응급실로 몰려오는 통에 밤새 환자를 보고 다리가 풀린 상태로 응급실을 나서서 다시 숙소로 와서 잠깐 샤워를 하고 아침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눈이 벌겋게 된 상태로 어찌어찌 컨퍼런스를 마치고 일과를 시작했다.
환자가 없는 시간을 틈타 쪽잠을 자면서 근전도 검사실에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몇 명의 근전도 환자 검사를 겨우 끝내고 점심시간에라도 잠깐 눈을 붙일까 했는데 과장님께서 모처럼 맛있는 점심을 사겠다며 병원 앞에 새로 생긴 낙지 철판 볶음밥 식당으로 전공의들을 데리고 가셨다. 매콤한 낙지 볶음밥을 먹다 보니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조금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한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식당 안은 좀 소란스러워서 바깥으로 나와서 전화를 받았는데 집사람이 딸아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보드라운 세 살 된 딸아이의 목소리...
아빠, 베개에서 아빠 냄새가 나...
순간 코끝이 쌔하게 달아올랐고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며칠 동안 아빠를 보지 못했더니 아빠가 보고 싶었던지 아빠 베개를 끌어안고 냄새를 맡더니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하길래 아내가 전화를 해서 아이의 목소리를 들려준 것이다.
그 말을 들으니 한 걸음에라도 달려가서 안아 주고 싶지만 전공의 2년 차 신분은 그럴 수가 없다. 그냥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온몸으로 아빠를 찾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빠도 많이 많이 보고 싶어. 사랑해~
라고 말하고는 아쉽지만 전화를 끊고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다.
내가 눈시울이 조금 뻘게져 있는 상태로 남은 밥을 마저 먹으려고 하니 과장님이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아, 아닙니다. 제가 며칠 집엘 못 들어갔더니 딸아이가 제 베개를 끌어안고 자꾸 아빠 냄새가 난다고 해서... ”
과장님은 잠깐 멈칫하시더니 이내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면서 의국장 선생님을 돌아보셨다.
“오후에 근전도 검사는 의국장이 좀 맡아주면 안 되겠나?”
의국장 선생님이 흔쾌히 그러시겠다고 하자 과장님은 점심 먹고 바로 퇴근하라고 하셨다.
“아닙니다. 오후에 몇 명 검사가 예약되어 있는데 마무리해야 합니다.”라고 사양하자 이번에는 의국장 선생님이 괜찮으니 어서 과장님 말씀대로 하라고 재촉하셨다.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과장님께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그날 나는 잘 타지 않는 택시를 서둘러 잡아타고 집으로 향했다.
택시는 나는 듯이 좁다란 대전 천변 도로를 따라 가오동 쪽을 향하고 있었다.
"베개에서 나는 냄새 대신 진짜 아빠 냄새를 맡게 해 줘야지... "하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