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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왔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8)

by 김정훈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전공의 (8)


천국이 왔다.



나도 곧 퇴근을 한다.


4년 차 선생님이 전문의 시험을 마쳤다. 한 달만 지나면 1년차 선생님이 들어온다. 이제 드디어 내가 병원에서 퇴근을 할 수 있는 날이 다가오자 아내는 서둘러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기존에 살던 집에서 퇴거를 하는 시기와 대전에 살게 될 집의 입주 날짜가 맞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마침 15평 남짓되는 전공의 숙소가 있었다.



나는 주로 4년 차 김동수 선생님과 함께 숙소를 쓰고 있었다. 이제 4년 차 선생님은 전문의 시험을 합격한 후 숙소를 쓸 일이 없었고 3년차 선생님도 결혼을 한 분이어서 숙소가 따로 필요 없었다. 2년차 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어서 별도의 숙소가 있었기에 새로 1년 차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까지 한 달 정도는 숙소를 나 혼자 쓰는 셈이었다.


입주전까지 두 주 남짓 시간을 숙소에서 가족이 모두 임시로 살기로 했다. 전공의 생활 꼬박 10개월 만에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왔다.

천국이 왔다.



작은 방 2개와 촌티나는 옥색 씽크대가 있는 주방 겸 거실, 낡은 빌라촌의 자그마한 4층 꼭대기 집으로 아내와 아이들이 왔다.



칙칙하던 숙소가 아내와 아이들 덕분에 재잘거리며 웃음소리가 넘치는 천국이 되었다.



아무도 반길 이가 없던 숙소에서 세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낮에 근무하는 것도 더 가볍고 즐거워졌다. 아직은 1년차 선생님이 들어오기 전이어서 야간에 수시로 콜을 받고 나가야 했지만 베이스캠프가 너무도 든든하고 따뜻하였다.


그 때 알았다.


천국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고 누구와 함께 사는 것임을...



야구장에서 타자는 힘껏 공을 치고 힘껏 뛰어나간다.


가능한 공을 멀리 보내고 열심히 뛴다.



그렇게 뛰어서 어디로 가는걸까?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홈으로...


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뜀박질은 카운트되지 않는다.


야구는 어쩌면 우리 일생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침에 집을 나서면 우리는 다들 바삐 어디론가 뛰어 간다.

열심히 달려서 어디로 가는걸까?

멀리 가는 것 같으나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홈으로...


돌아올 곳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고 멀리 가는 것은 베이스캠프 없이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더 높은 곳을 바라 볼수록 더 단단한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


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달음질은 카운트되지 않는다.

야구에서도

인생에서도...



전공의 1년 차는 주로 병동 주치의를 맡아서 당직을 도맡아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삶이 곧 일이고 일이 곧 삶인 그런 날들이었다.

숙소에서도 다음날 컨퍼런스 정리하고 환자의 문제점을 정리하여 보고서를 작성하면 그냥 쓰러져 잠들 뿐...


이제 일이 끝나면 아이들 얼굴을 보고 아내가 끓여 주는 된장찌개와 고등어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의 보드라운 살결을 느끼며 잠이 들 수 있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숙소였던 그 작은 집이 이제 홈이 되었다.


나는 늦은 밤 일을 끝내면 홈인하는 셈이다.


그 때 알았다.


멀리 간 것을 성취라 하지만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완성임을...


다시 돌아올 곳이 없다면 무엇하러 그리 멀리 가는가?



마음이 흐르는 곳, 홈으로...

나도,

아이들도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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