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꼬이게 하는 12가지 : 세 번째 이유(3)
인생이 꼬이는 세 번째 이유(3) : 이기적 인간, 이타적 인간의 중첩(3) "이기적 인류는 어떻게 망하지 않을 수 있었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생존 그 자체가 가장 원초적인 목적이기에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으로 사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러나 나의 생존과 타인의 생존이 부딪칠 때 그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하는 것은 인류에게 매우 어려운 숙제야. 수 만년 동안 반복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점은 인류는 여전히 역사로부터 무언가를 배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돌연변이처럼 독특한 사람들이 가끔씩 나타나곤 한다.
약 2천5백 년 전 인도의 북부, 티베트의 작은 왕국에서는 아주 영특한 한 왕자가 깊은 고민에 빠졌단다.
왜 새는 살기 위해서 벌레를 잡아먹어야만 하는가?
누군가 살기 위해 왜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가?
싯다르타의 이 질문은 아무것도 부족할 것이 없는 환경에서도 그를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고 결국 수행자의 길로 들어서게 만들었지. 그의 깨달음은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이것과 저것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는 연기설로 이어졌어.
싯다르타가 부처가 된 배경에는 이런 극단적인 이기심이 결국 타인과 주변 환경을 파괴하고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파국을 가져온다는 깨달음이 있었단다. (네가 얘기한 것처럼 스마트한 이기심의 끝에는 이타심이 있다는 말은 어쩌면 싯다르타의 깨달음과 이어져 있는 것 같구나.)
인류의 죄를 드러내고 자신의 몸을 온 인류의 죄에 대한 속죄물로 바쳤다는 예수도 극단적인 이타주의자처럼 보인다.
자신을 극형인 십자가에 매단 사람들을 바라보며 예수가 한 말은 너무도 드라마틱하여 극단적 이타주의자의 전형과도 같다.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저들은 알지 못하여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독특한 이런 사람들은 어쩌면 이기심 제로, 이타심 백퍼인 것처럼 보인단다.
이런 사람들이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그런 길을 가지는 않았겠지만 이기적 유전자가 자신의 생명을 후손에게 남기기 위해 나름의 생존전략을 선택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폭력을 바탕으로 거대한 제국을 만들고 많은 왕비를 거느리며 수많은 자손을 남긴 황제들의 후손은 몇 대만 지나더라도 그 황제의 본질을 제대로 물려받을 수 없다.
반면, 싯다르타, 예수와 같은 극단적 이타주의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버린 것처럼 보였는데 수천 년을 지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뿌리 박혀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독특한 현상이다. 이기적 인류가 자멸하지 않고 아직도 지구에서 가장 우월한 생물종이 된 이유가 바로 이런 류의 극단적 이타주의자들 때문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극단적 이타주의자들은 같은 세대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아니, 어쩌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그런 사람을 그렇게 값어치 있게 보지 않거나 세상이 다른 곳에 관심이 팔려 그들이 잊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사람들은 흔하지 않고 아빠도 그럴 자신은 없어서 네게 이런 길을 가라고 할 수는 없구나.
그렇다면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는 잠시 만족할 수는 있으나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되고 극단적 이타주의자들은 감히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다음 시간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왜 반대말이 아닌지에 대해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