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꼬이게 하는 12가지 : 세 번째 이유(4)
인생이 꼬이는 세 번째 이유(4) 이기적 인간, 이타적 인간의 중첩(4) "이기심과 이타심은 왜 반대말이 아닐까?"
놀부와 같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은 다른 사람은 무시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다 보니 잠시는 만족할지 몰라도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될 테니 그건 우리의 길이 아닌 것 같고 싯다르타나 예수와 같은 극단적 이타주의자들처럼 살기는 너무 어려워 보여서 아예 엄두가 나질 않지?
오늘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지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길을 선택하기 이전에 이기심은 이타심과는 반대편에 놓인 말 같은데 과연 정말 그런지 한 번 살펴보자꾸나.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는 그 본질을 꼼꼼하게 탐구해 보는 것이 중요하니까.
원점을 기준으로 x축에서 이기심이 좌측 끝에, 이타심은 우측 끝에 놓인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원점에 있는 사람들은 애덤 그랜트의 기브 앤 테이크 책에 나오는 매처 matcher라고 할 수 있겠지. 받은 만큼은 꼭 보답하기 원하고 내가 주었다면 그 비슷한 수준으로 받기를 원하는 아주 흔히 보는 사람들의 유형이야. 흥부 놀부의 제비라고 할 수 있지.
좌측 끝에 있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들은 우리 느낌에는 놀부, 애덤 그랜트의 표현대로라면 테이커 taker라고 할 수 있겠지.
우측 끝에 있는 극단적 이타주의자들은 흥부 같은 기버 giver가 되겠지?
평범한 matcher는 말 그대로 흔히 보는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나 행복감도 평범한 수준이지.
그렇다면 이렇게 혼돈스러운 자본주의 세상에서 마구 퍼주는 giver와 아주 똑소리 나게 자신의 이익만 철저히 챙기는 taker 중에서 누가 더 큰 성취와 행복감을 맛보게 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손해를 많이 보는 유형은 giver란다. 정말 착한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스마트하지 못한 giver들이 사기를 당하거나 빚보증을 잘 못 서서 자신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다 같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단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사다리 맨 꼭대기에도 giver가 있단다. 단순히 착하기만 하고 스마트하지 못한 giver들이 taker에게 이용을 당하는 것과 달리 이런 스마트한 giver들은 taker들의 속셈을 빨리 알아차리고 그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경제적인 문제로 엮이는 일을 아예 하지를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철저히 보호한다는 면에서는 이기적이지만 일정 부분은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쓸 줄 아는 이타심도 함께 지니고 있단다.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님의 경우 본인의 노력으로 쌓은 부를 절대로 명분 없는 곳에 쓰지 않고 과도한 친절도 베풀지 않는다. 누군가가 투자를 위해 손을 벌린다 하더라도 절대로 그냥 주는 법이 없어. 그런 면에서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
한편 그렇게 모은 돈이 좋은 곳으로 흘러가게 하는 지혜도 함께 지니고 있단다. 김승호 회장님은 이러한 사람의 크기를 수각의 크기에 비유하면서 수각 이론이라고 하더구나. 산속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은 돌로 만든 큰 그릇을 수각이라고 하는데 수각이 크면 많이 모아서 많이 흘려보낼 수 있고 수각이 작으면 작게 흘려보내게 된단다.
예를 들어 휴스턴의 한국영사관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전시관을 개관할 때 이야기다. 8,000만 원이 모자라서 꼭 필요한 문화재를 구입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승호 회장님은 선뜻 쾌척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시더라.
"나에게도 8,000만 원은 큰돈이지만 큰돈은 다 큰 아이와 같아서 더 좋은 곳으로 보내야 한다. 그러면 좋은 친구들과 함께 다시 나를 찾아올 거야."라고.
물론 그 당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본인 스스로 그렇게 돈을 인격체로 대하고 더 좋은 곳으로 보내는 마음을 가진 거지.
그렇게 영사관에 기부를 한 며칠 뒤에 미국의 어느 출판사에서 회장님의 한국어판 책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자는 제의가 왔고 그것으로 기부한 금액은 모두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온 셈이지.
그러나 통장의 잔고는 원래와 같을지도 모르지만 돈이 돌면서 더 좋은 일을 하고 오지 않았니? 이것이 스마트한 기버들이 돈의 속성을 이해하고 돈의 힘을 발휘하는 과정이란다.
이런 기부행위를 이기심이라고 해야 할까? 이타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빠가 보기에 이것은 이기적 이타심이야. 이기심과 이타심이 한 축에 놓인 반대말이 아니라는 뜻이지.
이런 스마트한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행복의 정도가 자신의 이익만 계속 커지기만 한다면 불안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래서 주변도 함께 행복할 만한 일들을 하곤 하지. 그것이 표면적으로는 이타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셈이야.
예전 만석지기 경주의 최부자 댁에는 아래와 같은 집안을 다스리는 교훈이 있었다고 해.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경주 최부자 가문은 스마트한 기버 Smart Giver라고 할 수 있겠지.
1600년대 초 17세 손인 최진립과 그의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최국선(1631~1682)으로부터 28세 손인 최준(1884~1970)이 영남대학교에 전재산을 기부한 1947년까지 300여 년 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기간 부를 지켜온 가문이다. 물론 최부자 가문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졌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거의 모두 당대에 망하거나 길어야 3대까지도 못 간 경우가 대부분이야.
아빠는 최부자 가문이 오랜 기간 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철학과 함께 근면하고 스마트한 기버의 품격을 유지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어.
경주 최부자, 김승호 회장, 이 외에도 우리 주변에서 자신의 부를 스마트하게 지키면서도 타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스마트하고 행복한 이기주의자라고 불러. 물론 이기적 이타주의자라고 해도 되겠지.
이런 사람들은 이기심과 이타심이 반대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오히려 경계가 좀 모호하고 두 가지 마음이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다음 시간에는 이기심과 이타심이 공존하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이야기임을 확인해 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