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가 많으면 고지혈증도 잘 생길까?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은 고지혈증이 잘 걸릴까?
흔히 알기로도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과연 스트레스가 고지혈증과도 연관이 있을까요?
작년부터 시작된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의 외부활동이 금지되어 최소한의 생활만 이어온 것이 벌써 2년이 다 되어 갑니다. 올해 초에는 병원일은 늘 하는 일이었지만 새로운 계획을 진행하느라, 또 개인적인 일로도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습니다.
저는 MBTI 검사상 극단적인 외향성이고 자기주도 성향이 강한 ENFJ 성격이라 외부에서 운동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데 코로나 시국은 에너지가 고갈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제가 고지혈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명상과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제 마음을 살피고 내면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많은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스트레스의 근원을 바깥에서 찾기보다는 나 스스로 놓쳐버린 내면의 문제라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잠잠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의 크기와 지속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불편함과 두려움,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느낌이 올라올 때마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 불편함, 두려움, 불안을 지그시 바라볼 수 있고 때로는 연민의 마음으로 그 느낌을 안아주기도 합니다.
명상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내 속에는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원시인이 하나 들어 있다고 알게 된 것입니다.
이 원시인은 함께 사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고 사나운 동물이 수풀 속에서 뛰쳐나와 나를 잡아 먹지나 않을까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숲길을 걸으면서 어디 먹을거리가 없나 두리번거리면서 사냥거리를 찾습니다. 그러니 낯선 곳이나 낯선 사람을 경계하고 수풀 뒤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면 맹수가 나를 잡아 먹지나 않을까 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죠.
현생 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처음 나타난 것을 20~30만 년 전으로 보지만 불을 다룰 수 있는 인류의 조상이 나타난 것은 백만 년이 넘습니다. 농경의 시작을 약 1만 년 전으로 본다면 99만 년 동안 인류는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면서 불안하고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었습니다. 농경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소수의 권력자들이나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늘 배고픔을 면하기 어려웠고 안전하고 풍요롭게 살게 된 것은 불과 몇십 년 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 이 원시인이 내 속에서 백만 년 동안 이어져 온 불안한 마음을 갑자기 변화한 환경에 맞게 그 느낌을 변화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하며 거의 생리적으로 느낌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제게 명상이란 이 원시인의 느낌을 다독여 주는 것입니다.
"그랬구나, 네가 보기에는 저 사람의 눈초리가 그렇게 사나워 보여서 두려웠구나."
"그랬구나, 네가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사건을 보니 세상이 온통 사바나처럼 보이는구나. 사방에 맹수가 우글거리고 너는 네 한 몸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긴장하고 있구나."
"그랬구나, 너와 네 아이들이 이 전쟁터 같은 곳에서 살아남기가 힘들까 봐 불안해서 그렇게 소리를 질렀구나."
오늘도 저는 제 속에 살고 있는 원시인의 그 느낌을 잠잠히 바라보면서 원시인을 다독이는 중입니다. 그 느낌을 알아차리되 그 느낌에 끌려가지 않으려 합니다. 원시인의 느낌은 여전히 초원지대에서 수풀 뒤에 맹수가 있을지 오늘의 점심 메뉴가 될 토끼가 있을지 조마조마해하는 그 느낌 그대로 지금껏 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 일어나는 느낌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립니다. 이 원시인이 안심을 해야 내가 할 일에 집중하고 삶이 흘러가는 것을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이야기합니다.
"괜찮아. 넌 안전해. 자세히 보렴. 저건 널 해치는 것이 아니야. 여긴 사바나가 아니라구. 여기는 놀이터야. 온통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지. 가끔씩 사나운 녀석들이 있지만 몇 가지 원칙들만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아. 삶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게임이라구. 뉴스 같은 것에 속지 마. "
그렇게 내 속의 원시인을 다독이며 안심시키고 원시인의 느낌을 그대로 따라야 할 때와 살펴보아야 할 때를 알아차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과연 고지혈증과 이 원시인의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관계가 있을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원시인이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 압박감과 피로감, 우울과 후회는 과연 고지혈증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현대인은 원시인과 완전히 다른 비교적 안전한 세상에 살지만 여전히 그 느낌을 그대로 따르기 때문에 어쩌면 수렵, 채집할 때의 원시인들 보다 더 스트레스가 많은지도 모릅니다.
원시인들은 맹수가 사라지고 먹을 것만 있다면 함께 놀고 춤추며 삶을 즐겼을 겁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언제 맹수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마음에 늘 긴장하고 직장에 가면 맹수 같은 상사, 학교에서도 사나운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늘 도망치듯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온종일 스트레스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됩니다. 먹을 것, 안전하게 잠잘 곳이 있는데도 이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와 고지혈증에 관한 연구는 고속버스기사를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있었습니다. 늘 배차시간에 쫓기며 많은 승객을 상대하는 버스기사들의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또한 버스기사들의 스트레스가 고지혈증과 연관이 있다면 이것은 개인의 건강 문제뿐 아니라 함께 버스에 탄 승객들의 목숨과도 직결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지혈증은 결국 혈관 문제로 이어져 급성 심근경색이나 뇌졸중과 같이 갑작스럽게 쓰러지게 되어 버스기사님 본인의 생명뿐 아니라 승객의 생명도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는 국내의 직업환경의학과 의사 선생님들의 연구결과입니다.
고속버스기사들의 업무 스트레스와 고지혈증의 관계
업무의 압박감이 클 때 총 콜레스테롤, LDL 콜레스테롤 높아져
업무의 중압감을 많이 느낄수록 총 콜레스테롤과 LDL 콜레스테롤이 모두 높아져서 고지혈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에서 LDL 분획 검사를 통해 크기까지 비교했더라면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을 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더 좋은 연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일수록 HDL 콜레스테롤 낮아져
정확한 이유는 다 밝혀져 있지 않지만 스스로 업무를 통제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면 더욱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결과적으로 HDL이 낮아지는 것과 연관성이 있다고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상의 연구는 국내 연구였고 선진국들의 업무 스트레스와 고지혈증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9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2013년도에 스칸디나비아 공공보건 논문에 실린 유럽인들의 업무 스트레스와 고지혈증에 관한 내용입니다.
업무 스트레스와 고지혈증의 상관관계
유럽인들의 연구에서도 업무 스트레스는 총 콜레스테롤, LDL 높이고 HDL은 낮아져 고지혈증과 연관관계 큼.
잠재적인 변수가 될 만한 다양한 요인들을 모두 감안하더라도 업무 스트레스는 총 콜레스테롤, LDL을 높이고 HDL이 낮아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능의학적인 관점에서도 업무 스트레스는 고지혈증과 연관관계가 큼.
또한 이 연구에서는 기능의학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는데 제가 이 전 글에서 언급한 새로운 고지혈증 진단기준 중 두 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총 콜레스테롤/HDL 비율이고 또 하나는 LDL/HDL 비율입니다. 이 두 가지 항목도 모두 높아져서 기능의학적인 관점에서도 업무 스트레스는 고지혈증과 연관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중성지방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되지 않은 것이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중성지방도 업무 스트레스와 상당한 연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이 되거든요.
이 연구는 상관관계 연구이지 인과관계 연구가 아닙니다. 따라서 업무 스트레스가 고지혈증을 유발했는지 고지혈증이 업무 스트레스를 유발했는지 단순하게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 볼 때 대부분의 고지혈증이 특정한 증상을 잘 나타내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고지혈증이 업무 스트레스를 유발했다고 보기는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업무 스트레스가 고지혈증을 유발하지 않을까라고 추정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입니다.
이상으로 스트레스가 고지혈증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뭐,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나와서 그리 놀랄 것은 없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을까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내용들이 실제로 드러나면서 우리 몸은 마음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몸과 마음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의학의 틀을 벗어나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혈액을 뽑아서 성분을 분석하고 그 성분을 개선하기 위한 약물을 투입하는 것으로 혈액검사 수치 만을 개선하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하는 느낌입니다.
비슷한 업무환경에서도 각자 느끼는 스트레스의 크기는 달라!
위에서 분석한 버스기사의 업무 스트레스는 대부분 비슷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비슷한 환경이라도 얼마나 압박을 느끼는지, 자율성이 얼마나 제한받는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두 제각각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각박한 근무환경은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주어진 환경을 어떤 관점으로 받아들일까 하는 것도 환경 그 자체만큼, 때로는 환경보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싸우거나 피할 것인가? vs 잠잠한 마음으로 그 스트레스의 실체를 바라볼 것인가?"
"내 바깥의 문제인가? vs 내 안의 문제인가?"
명상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은 일단 내 판단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 대상의 실체를 바라보고, 그다음 행동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는 우리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본질은 우리가 스트레스의 바닥에 깔려 있는 우리의 관념, 기대, 생각의 실체를 마주 보지 않고 느낌에 따라 무조건 피하거나 무조건 맞서 싸우거나 하면서 스트레스를 더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지혈증의 위험에 빠진 분들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바꿀 수 있는 것들은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잠잠한 마음으로 그 실체를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고요한 마음으로 불안, 고통, 두려움을 마주 보면 대체로 내가 본능적으로 피하려고만 했던 그것이 그렇게 압도적으로 크지 않고 생각보다 그렇게 괴물 같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불안, 고통, 두려움은 몇 십만 년 전 사바나에서 먹을 것을 찾고 맹수를 피하려고 두리번거리던 원시인의 본성일 수 있습니다. 내 안의 그 원시인을 연민의 마음으로 다독여 주면 어떨까요?
먹을 것이 있고 안전할 수만 있다면 별을 보고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노을을 보며 감탄하던 원시인들의 환경이 더 안전할까요?
현대인들의 환경이 더 안전할까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원시인류의 남성은 2%에서 약 20%가량이 폭력이나 사고로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폭력에 의한 사망률은 10만 명당 1.1명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낮은 편에 속합니다. 오히려 자살률이 10만 명당 26.6명으로 거의 25배가량 높습니다. 이 자료는 2018년도 통계이며 실제 자살한 사람들은 통계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합니다. IMF로 온 국민이 힘든 시기가 18.6이었으니 지금이 그때보다 더 살기 어려운 것일까요?
원시인들에게는 가장 큰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이 맹수였다면 현대인들에게는 어쩌면 스트레스가 아닐까요?
급박하게 변하는 환경과 불안한 미래가 스트레스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스트레스의 뿌리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경쟁하고 투쟁하거나 도망치지 않고도 삶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가 다 능력자는 아닙니다.
맹수가 사라진 시대에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 위협을 느끼는 것은 우리 속의 원시인의 느낌을 우리가 그대로 믿어 버리기 때문은 아닐까요?
저는 오늘도 止 멈추고, 觀 자세히 관찰하고, 行 잠잠히 행동하는 법을 익혀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