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 하다 앤솔러지4

듣는다는 건, 결국 버티고 견디는 일

by 아무것도아닌






하나의 주제를 다섯 작가의 시선으로 엮어낸 앤솔러지의 매력은 다채로움에 있다. 동사 <하다>를 테마로 걷고, 묻고, 보는 행위를 지나 이번에 마주한 주제는 <듣다>이다. 단순히 소리를 듣는 차원이 아니라 이 책에서 '듣는다'는 건, 끊임없이 들려오는 세상의 소음 속에서 나를 지키려는 싸움이자, 버티고 견디는 일이다. 이 다섯 편의 이야기는 달콤한 위로 대신, 차분하지만 서늘한 질문들을 던지며 읽는 이의 감각을 예민하게 흔들어 놓는다.




무언가 기대하고 어떤 공간에 간다는 것,

그 의미는 공간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것이다.


사송, 김엄지 p029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소음과 침묵에 갇혀 있다. 김엄지의 「사송」은 연인에게 하지 못한 말과 듣지 못한 말 사이를 떠도는 황량한 마음을, 김혜진의 「하루치의 말」은 공감과 이해라 믿었던 관계가 실은 돈으로 얽힌 위태로운 거래였음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끝내 닿지 못한 진심이 다시금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마음이 씁쓸하게 전해진다. 반면 백온유의 「나의 살던 고향은」은 생존을 위해 침묵을 선택했던 영지가 갑자기 날아든 목소리에 반응하며 깨어나는 과정을 그리고, 서이제의 「폭음이 들려오면」은 평온해 보이는 일상의 고요가 사실은 비겁한 외면이 아니었는지 되묻는다. 여기에 최제훈의 「전래되지 않은 동화」가 쏟아내는 소음은, 쓸모없는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서서히 숨 막혀 가고 있음을 자각하게 한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단련되는 일.

말들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잠그는 일.

그러니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되풀이하는 일들.


하루치의 말, 김혜진 p063




이 책은 낭만적인 듣기를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듣기 싫은 진실, 모른 척했던 외침, 깊이 묻어두었던 내면의 소리를 직면하게 만든다. 세상의 소음을 걷어내고 나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은 아프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책을 덮고 나니, 진짜 들어야 할 소리가 무엇인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깊어진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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