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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Sep 23. 2016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만약’을 위한 자리는 없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사실의 숭고함

나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대며 망설이다가 내 맘대로 하지 못했더니 나중에 격한 후회로 남은 경험이 몇 번쯤 쌓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엄청 거창한 거 같은데, 그냥 밤 10시에 치즈케이크를 먹을까 말까 뭐 이런 것도 있다. (…) 그리고 더 궁극적인 이유는, 당장 내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인데 후회 없이 살다 가자, 이런 마음인 것이다.


이렇게 맘 가는 대로 살면서도 ‘아, 씨. 그때 그거 그냥 할 걸.’ 이런 후회를 결국은 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비행기 안에서다. 만약 비행기 사고가 난다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겠지. 생각해보면, 난기류를 만난 비행기 안에서 매번 ‘아.. 아직 못해 본 게 많은데..’ 후회하지 않기 위해 (꽤 기분이 나쁨)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렇기에,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이하 ‘설리’)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임을 알았을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서 보고 싶었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내가 생각하는 ‘상식’이라는 게 사실은 ‘상식’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다소 무서운 깨달음이 나를 덮쳤다.










재난'형' 영화: 재난의 탈을 쓴 '상식'에 대한 영화

사실 '설리'는 재난영화는 아니다. 뭐 굳이 따지자면 ‘재난 직전의 영화’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는다. 그리고, 누구나 예상하는 플롯의 영화는 더군다나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재난 영화의 공식>

다수의 등장인물들의 드라마를 엄청 보여줌 (폭풍 감정이입)

기다렸다는 듯 재난이 일어남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막 힘을 모으고 엄청 똑똑해짐 (ㅇㄱㄹㅇ)

나쁜 놈이 나타나서 내 성격을 테스트함 (김의성 씨…)

몇 명 정도는 결국 세상을 떠남

재난의 클라이맥스! 우르르르쾅!

~ (어떤 식이든) 엔딩~

 

<그런데, 설리>

등장인물들의 드라마, 업ㅋ엉ㅋ

새떼는 나타나지만 재난은 안 일어남

평범한 사람들은 그냥 평범함. 설리는 원래 똑똑했음.

나쁜 놈 없음 (=김의성 씨 없음)

죽는 사람 없음

아무런 사건 추가 없이 소재와 주인공의 힘으로 카타르시스를 줌

~ (나에겐 상당히 감동적이었던) 크레딧 엔딩 ~



둘 중 어떤 경우가 더 상식적으로 느껴지는가? '설리'를 보기 전의 내겐 전자가 상식이었다. 실제든 영화에서든 나를, 승객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고 책임져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범한 나는 살아남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자기를 믿고 따라주는 팔로워가 있다면 리더는 우리를 책임져야 하고 그러면, 살 수도 있다는 걸. 이게 상식이어야 한다는 걸.







또한 ‘설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고 블록버스터 오락영화가 아니기에 즉, 관객을 클라이맥스와 '사실상의' 엔딩으로 끌고 갈 에너지를 전혀 다른 지점에서 찾고 있기 때문에 시간순 배열이 아니다. 그렇다고 정확한 역순도 아니고, 실제 사건이 a-b-c-d-e 라면 영화는 e-a-c-b-d 형식의 사건 배열을 보여주는데, 친절한 영화를 기대하고 간다면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으나 관객이 따라가기에 큰 무리는 없다. 그리고, 이 영화의 시간의 흐름에 대한 표현법 자체가 바로 정확히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최적의 극적 장치였다는 생각이 든다. (보시면 알 거예요....)

 

 




만약, 이라는 말은 아무 데나 쓰는 것이 아니다.



비행기가 운항 중 새떼를 만났고, 그래서 양쪽 엔진이 손상되었고, 캡틴 설리는
허드슨 강에 비상 착수하여 탑승객 ‘전원’이 구조되었다.




과연 이 문장에서 ‘전원’보다 중요한 단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 문장에서 ‘만약’이 끼어들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생각하는 ‘만약’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만약, 오늘 아침 버스 말고 지하철을 탔다면 지각을 안 했을까?

만약, 왼쪽이 아닌 오른쪽 엘리베이터를 탔으면 부장님을 피할 수 있었을까? (흑..)

만약, 그 날 내가 약속 장소에 나갔다면 우리는 지금 함께일까?



뭐 이런 데에나 쓰는 말이라는 거다.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에 만약이라는 건 없다. 이 문제에 한해서 만큼은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 비행기 사고 조사원들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게 많아 보인다.



만약, 왼쪽 엔진은 완전히 고장 난 게 아니었다면?

만약, 근처 공항으로 ‘정상적으로’ 회항했다면?

만약, 캡틴 설리가 관제실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면,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만약.. 만약..그놈의 만약...




‘만약’이라는 꿈나라의 정반대 편에 대치하는 ‘진짜 현실’에서, 탑승자 전원의 생명과 세계가 단 하나의 소실도 없이 오롯이 구해졌다면 더더군다나 만약이라는 가정은 존재할 수 조차 없다.



우리가 가끔 잊고 사는 게 있는데, 원래 만약의 세계라는 건 아예 이 세상에 없다. 마치 ‘이미 벌어진 현실’과 ‘만약’ 중에 선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으레 아까워하곤 하는데, 그건 그냥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던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차원일 뿐이다. 그러니까, ‘용’ 같은 거지. 드래곤.



만약은 없다. 지금만이 존재할 뿐.

더 나은 만약은 없다. 지금 이 순간, 단 하나의 생명도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남았을 뿐.


영화를 보는 내내 소리치고 싶었다.

 







 

 

155-1=0 그리고 50,801,000-1=?

우리는 이 영화에서 말하는 ‘기적’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영화 속 (그리고 실제이기도 한) 155개의 세계는 무사히 이어지고 있지만 우리가 구하지 못한 아이들의 세계는 아직도 그 날 그 시간에 멈춰있다. 그렇다. 또다시, 아이들이다.


정말 놀라운 점은 이 사건이 2009년에 일어난 실화이고 우리 아이들의 세계가 멈춘 건 그로부터 5년이나 지난 후인 2014년이라는 점이다. 즉, 아무리 좋은 선례가 우리를 자극해도 바뀌는 것은 없으리라는 절망을 발견해버린 것이다.


나는 이번 기회에 그간 애써 외면해왔던 사실을 ‘설리’를 통해 완벽히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아마 죽을 때까지 4월 16일과 아이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른인 나를 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렇게 때때로 떠올리며 괴로워할 것'이라는 거다. 이 또한, 만약은 없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2016년 지금, 비단 아이들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도 아직 그날 그 시간에 멈춰있다.










2016년 상반기 기준 대한민국 국민 총인구수는 50,801,000이다. 내가 안 세면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서 한 번 찾아봤다. [50,801,000]이라는 숫자를 누군가는 캡틴 설리처럼 목숨보다 더 소중히 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조금 담아서.




(+)

모든 관객이 엔딩 크레딧 영상까지 다 보고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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