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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 Nov 01. 2016

무현, 두 도시 이야기

또 지러 나가보자

시절이 하 수상하다.



내가 가진 모든 상식과, 얕게나마 ‘이게 맞다’고 지키고 있던 최소한의 가치마저 파괴되는 느낌이다.



스물한 살, 지독한 실연을 당하고 흔하디 흔한 어느 대중가요의 가삿말처럼 ‘너 보란 듯이 망가져주겠어’ (... 어렸으니 봐주자..) 라며 어린 간에 소주를 들이붓던 시절 이후, 이렇게 내 간을 혹사시키는 건 처음이다. 다른 점은 그때는 철저히 나란 인간의 사적인 영역의 이슈였기에 그냥 엄마에게 등짝 맞으며 정신 좀 차리라는 소리를 듣는 정도, 1교시 수업을 다 빠져 평점 0.5점이 날아간 정도, ‘너한테 맨날 술 냄새 나….’라며 나를 피하는 학우들에게 잠시간의 외면을 받은 멋쩍음. 딱 그 정도였다.


 

국민의(=나의) 세금이 어딘가 엉뚱하게 쓰이지도, 국민에게 정당하게 권리를 위임받지 않은 자가 국민을 철저히 유린하지도, 그래서 어느 영아는 예방주사를 못 맞고 독감에 걸리지도, 이름 모를 개미 투자자들이  스스로 명을 달리하지도, 기업의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어떤 청춘이 최저임금에 시달리지도, 않았었다.



어리석게도 지금까지 내 인생 최대의 시련은 그때 그 실연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돌이켜보면 엄마가 때린 등짝 한 대 따위는 얼마나 하찮은 일이었던가. 최근 터지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길지 않은 인생에서 겪은 좌절감의 정도와 기준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하필 지금이다. 하필 지금 ‘무현, 두 도시 이야기’라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아니 무슨 사람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의 개봉 시기마저 이토록 극적인지. 이 영화의 첫 번째 관람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전원을 켠 스마트폰에는 영화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뉜 세상이 담겨 있었다. 얼핏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의 나열 속에, 혹시 영화 볼 때 너무 울어서 내 눈이 잘못됐나, 잠깐 생각해보기도 했다. (10/24의 일이다.)



조금 더 냉정을 찾은 나흘 후, 영화의 주 배경이 되는 부산에서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다시 한번 관람하고 이 글을 써내려 감을 밝힌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실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펀딩에는 참여했지만, 과연 내가 선뜻 시사회를 갈 수 있을까 고민했더랬다. 왜냐하면, 나는 떳떳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원래부터 그를 다 이해했던 척, 민주주의를 수호했던 척, 옳고 그름을 구분했던 척한다는 게 내 마음에 너무 걸려서,였다.



모두들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 기억이 안 난다면 죄책감에 기억을 지운 거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한 때 대한민국은 일명 '노무현 까기' 놀이가 유행한 적이 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댓글이 달리곤 했던 ‘흑역사’인데, 생각해보니 나도 묵언의 동참을 했던 것 같다.



하루는 학교 동기 하나가 내게 와서 웃으며 말했었다. 어제 A매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가 지니까 베댓(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였다고. 그때는 그냥 겨울이 돼서 눈이 많이 오든,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든 지간에 무조건 '그 댓글'을 누가 가장 먼저 다는지 겨루던 시기였기에 나도 웃어넘겼던 것 같다.



웃어, 넘겼다.



그게 왜 노무현 때문인지 설명해보라고 그 친구에게 묻지 못했다. 그게 왜 웃기냐고 따지지 못했다. 대댓글로 ‘뭐가 옳고 그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의견을 올리라’고 하지 못했다. 나는 그냥 웃었고, 넘겼다.



그리고, 나는 과거를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따위의 글이라도 쓰고 있다.





그가 살던 2000년, 우리가 사는 2016년.

영화의 주된 배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산에서 민주당으로 출마했던 2000년 총선 때이다. 그로부터 무려 16년이 지난 올해 총선에서도 야당은 부산에서 이른바 ‘승리’ 하지 못했고, 이는 지역과 당만 바꿔 적용하면 타 지역에서도 동일하다. 즉 우리 대부분은 아직도 ‘사람’이 아닌 당을 보고 투표를 한다는 뜻이다. 선거운동을 할 때 지역민들을 위한 정책을 부르짖는 게 아니고 번호를 외친다는 뜻이다. 그런데 16년 전의 노무현은 ‘사람’을 부르짖었다. 당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달라고 목이 쉬도록 말하고 다녔다. 이제야 어렴풋이 몇몇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을 그 사람은 그때 말했다. 민주당 텃밭 가서 공천받으면 당선 까짓 거 별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 사람은 그런 도전을 2000년에 하고 있었다.



먹혔겠는가, 그게?

그리고, 그럴 줄 몰랐겠는가, 그가?



2000년은 말이다, 어떤 시절이었냐면. 상대편 진영인 한나라당 허태열 후보가 상대 후보도 동석한 유세장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시절이다. ‘먹고살기 힘드시지요? 어디 먹고살만하신 분 손 들어보소. 아~ 몇 분이 계시네. 혹시 전라도에서 왔습니까?’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시절이다. (이때 친구가 ‘미친 거 아냐’라고 육성으로 말해버렸다. 혹시 같은 상영관에 계셨던 분들이 보신다면, 대신 사과드린다. 너무 화가 나서 그랬을 것이다. 우리 애가 원래 그런 애가 아닌….)



이 유세 이후 이동 차량 안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렇게 말한다. 당선에 눈이 멀면 지역감정을 이용하고 싶어짐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고. 영/호남 지역 간 각자의 역사가 있지만, 호남 지역은 국가 권력에 의해 민간인 살상이 벌어진 지역이기 때문에 영남이 어느 정도 이를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이다.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은 생략하겠다.





원래 지는 겁니다.

서울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옆자리엔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영화가 시작됐는데 도입부의 내레이션부터 마지막 내레이션까지 그와 나는 쉴 새 없이 같이 울었다. 그 청년의 옷소매는 계속해서 젖어갔고 상영관내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부산에서 이 영화를 볼 때 하나 건너 자리에는 어린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렇구나, 하고 영화가 시작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학생은 훌쩍였더랬다.


미안했다, 두 청년들에게. 왜 꽃 같은 청춘들이 햇살같이 웃지 못하고 어두운 극장 안에서 흐느껴야만 하는가. 영화 속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런 말을 한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중요하다. 작게나마 '성공'의 기억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나는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어른인가. 우리는 그들에게 '할 수 있다'는 기억을 심어주는 어른이었던가.

나는 어른들에게 희망을 받은 적이 있던가. 그 어른들은 내게 '할 수 있다'는 경험을 보여주는 어른이었던가.




이렇게 역사는 반복되고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 때쯤 노무현 후보 캠프의 해단식이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는 원래 지는 겁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어요. 하지만 매번 지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져야 하냐고 스크린에 대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의미가 있든 없든 모든 도전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0.0000001의 확률이나마 올리는 일 임을, 정말 깨닫고 싶지 않았지만,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진정 모른 척하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저 담담한 어조가 담고 있는 진심을 이해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참여정부가 추진한 정책 중에 틀린 것도 있을 것이다. 잘못한 거, 국민 대다수의 뜻과 반대되는 거, 사실 찾으려면 수도 없을 것이다. 다 안다. 다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그를 그리워하는 듯한 글을 쓰는 이유를 모두들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지금은 이런 논의가 가능한 수준조차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내 입으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말이다.



A정책이 어떤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는지, B예산이 왜 과소한지, C외교방안이 장기적으로는 국가안보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일은 일상을 지키고 난 후에 천천히 따져보도록 하자.



지금은 비록 지는 싸움이지만 또 지러, 나아갈 수 밖에는 없다.

내가 이해한 바는 이것 하나다.  











몇 번을 고쳐 쓴 맺음말이 어느 하나 내 마음에 차는 게 없어서, 이번만은 그에게 묻어가 보려 한다.




우리 국민은 수많은 좌절을 통하여

가슴에 민주주의의 가치와 신념을 키우고,

그리고 역량을 축적하여 왔습니다.

의미 있는 좌절은 단지 좌절이 아니라

더 큰 진보를 위한 소중한 축적이 되는 것입니다.




상기 다섯 줄의 발언이 지니는 우아함을 해치지 않기 위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말은 줄이겠다.



나는 여전히 나의 이번 글이 매우 맘에 들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행한다.

그 이유를,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는 모두가 찾아주길 바라본다.








(+) 12/10 추가수정

어제 정말 오랜만에, 자라나는 어린 세대들에게, 성공의 기억과 '하면 된다'는 경험을 심어줄 수 있었다. 너무 감격스럽네요. 보고 계시나요?...


또 앞으로 나아 가겠습니다.





(++) 5/23 추가수정

살다보니 살아볼 만하기도 하네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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