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을 못한다는 사실은 항상 마음의 짐이었었다. 사실 회사도 가깝고, 여가 시간에도 서울 내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차 없는 삶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가끔 교외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싶을 때에는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이는 차가 없으니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 번도 안 쓴 면허증을 갱신하고 나니 이제 진짜 운전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남들의 차를 얻어 탈 수만은 없을 터였다.
차를 사려고 한참을 고민했었다. 막상 차를 사려고 하니 선택지는 왜 이리 많은지. 차종은 뭘로 할지, 중고차를 살지 새 차를 탈지. 옆에서 입대는 사람들이 많아 더더욱 결정을 내릴 수 가 없었다. 첫 차는 중고차를 사야 한다. 중고차 중에도 킬로수 얼마 안 뛴 차를 사라. 아니다 굴러가기만 하는 걸 사서 막 타다 폐차를 시켜라. 아니다 새 차를 타야 더 조심해서 타게 된다. 안전한 큰 차를 사라. 운전하기 편한 작은 차를 사라. 시야가 확보되도록 SUV를 사라. 현기차를 사라. 현기차는 사지 마라… 끊임 없는 선택지 속에 파묻혀가고 있었다.
다행히 내게는 운전을 잘하는 친한 친구들이 있었다. 내 친한 친구들은 멋지게도 모두 운전을 한다. 나와는 다르게 각자의 이유로 20대 후반부터 다들 운전을 하고 다녔다. 고맙게도 뚜벅이인 나를 태우고 이곳저곳 놀러 가 준 좋은 친구들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차 구매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결국 내가 결정할 일이겠지만 내 성향을 잘 아는 친구들이니 도움이 되는 이야기나 쓸모 있는 정보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A에게 차를 살까 한다고 이야기했다. 운전을 하라고 계속 권유하던 친구였다. 차를 사면 활동 반경이 넓어지고 그 점이 무척 좋다고 말해왔다. 대학에서 만난 A는 면허를 딴지 얼마 안 되었을 때부터 겁 없이 차를 잘 몰고 다니는 멋진 친구다. 밥을 먹으면서 차를 살까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A는 잘 생각했다고 응원을 해 주었다. 이런 이런 차종이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조언도 잊지 않았다. 중고차도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친구와 헤어지고 친구가 추천해 준 차종을 검색해 보았다. 그렇게 크지 않아 첫차로 적합할 것 같았다. 후보에 넣어 놓았다. 며칠 뒤 A에게서 카톡이 왔다.
‘도토리야, 우리 남편이 무조건 요즘 나온, 최대한 비싼 차를 사래. 요즘 차가 안전 기능이 많아서 오히려 더 좋대’
고마운 조언이다. 그리고 당연히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당연히 비싼 차가 더 좋지. 하지만 친구는 내가 첫차로 턱턱 비싼 차를 살 정도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만났을 때에 고만고만한 차 들 중에서 후보군을 추렸었다. 친구가 집에 가서 남편에게 내가 차를 산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남편의 이야기를 다시 전해준 것은 신경 써준건 고맙지만 사려 깊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A의 의견이 궁금했던 것인데, 갑자기 A의 남편이 나에게 딱히 잘 맞지 않는 의견을 준 것이다. 그렇게 고맙지 않은 쓸모없는 정보였지만, 어쨌든 고맙다고 생각해 보겠다고 이야기한 뒤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시 친구 B에게 차를 살까 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중학교 친구인 B는 평소 가장 공통 관심사가 많은 친구였다. 취미도 같아 취미 이야기만으로도 대화가 끊이지 않는 친구이다. 이제 드디어 운전을 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이야기하니 B도 응원을 보내주었다. 얼른 운전이 익숙해지면 같이 교외 아울렛에 가서 쇼핑을 하자고 했다. 아직 차도 없는데, 둘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괜히 설레기 시작했다. 얼른 차를 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운전에 대한 의지가 더 굳어졌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도토리야 남편한테 너 차 좀 추천해 달라고 했는데 우선 집부터 사래’
A남편의 조언도 그리 달갑지 않았는데, B남편의 조언은 선을 넘었다. 평소에 달갑지 않게 생각했던 B남편의 말이라 더욱 귀에 가시처럼 박혔다. 악의 없이 전달한 친구도 미웠다. 하지만 전화상으로 굳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아, ‘집 살 돈이 있었다면 집을 샀겠지?’ 하고 웃어넘기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자 슬금슬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집을 사던 말던 도대체 무슨 상관인지. 돈 한푼 보태줄 거 아니면서 왜 제3자가 입을 대는 건지. 집을 살 수 있었으면 집을 샀겠지. 나는 차가 필요하다고 했을 뿐인데, 왜 갑자기 집 이야기를 꺼낸 건지. B남편의 말에서 시작한 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A남편의 말도 괜히 다시 생각나면서 기분이 곱절로 나빠졌다.
나는 친구 A, B를 좋아한다. 모든 면이 다 맞지는 않아도 함께한 세월이 있기에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 친구들의 근황과 관심사가 궁금하다. 요새는 어떤 게 재밌는지, 새로 생긴 취미는 없는지, 화나는 일은 없었는지, 새로 간 맛있는 식당은 없었는지가 궁금하다. 결혼을 하고 예전만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안 보면 가장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이 둘의 남편과도 몇 번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다. 몇몇 대화를 주고받긴 했지만 그리 친해지고 싶진 않았다. 나는 그들의 남편들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남편들의 의견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내가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친구에게 전해 들었을 수 있겠지만 한번 필터링이 된 나는 내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불완전한 정보를 통해 도출된 조언을 얻고 싶은게 아니었다. 나는 내 친구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그들의 의견이 나에게 맞던 맞지 않던 그냥 그 친구들과 차 살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 보고 싶었던 거였다.
나는 점점 내가 화가 난 것이 A와 B 인지 아니면 그들의 남편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기혼 친구들과 만나고 난 후에는 내가 한 모든 이야기기들이 그들의 남편에게 전달돼 있다. 그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이해하려고 한다. 부부란 사실상 뇌를 공유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남편들이 조언이랍시고 나에게 던진 이야기들에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만일 그 조언이 쓸모가 있다고 해도 나는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혼 친구들을 만나면 종종 남편의 TMI를 듣게 된다. 우리 둘이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를 할 때에도 ‘우리 남편은 이 치킨 브랜드보다 다른게 더 맛있대’라는 류의 전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적당히 반응을 하면서 넘기지만 친구 남편에 대해선 간간히 안부 정도만 듣고싶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들의 하는 조언은 더더욱 싫다.
결국 운전은 렌트카로 몇 번의 연습 중 주행 사고를 내고 다시 잠정 중단 중이다. 실컷 차를 추천해 달라고 귀찮게 하고는 없던 일로 하다니 나도 나름의 진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