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말을 하질 말던가.

by 윤도토리

첫 연애를 하던 스무 살 시절이었다.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개념조차 없었던 순수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벗어나 성인이 되어 첫 연애를 하던 때였다. 세상은 당연히 핑크빛으로 물들어있었고, 머리속에서는 내가 고른 이 사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자기합리화가 계속되던 시간들이었다. 어느 날 그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는 그 역시 나처럼 사랑에 취해있었는지 호기로운 제안을 했다. 내 생일은 11월 17일인데, 그에 맞추어 매일 저녁 11시 17분에 전화를 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에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이 설레었다. 처음엔 그게 뭔가 싶기도 했지만 생각해보니 다정하게 마음을 써준 것 같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매일 밤 전화벨이 울리면 생일선물을 받는 느낌일 것 같았다. 그날 밤, 11시 17분이 되자 달콤한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도 하던 일상적인 통화였는데도 뭔가 더 소중한 느낌이 있었다. 그 아이는 그 후 정확히 두 번 더 11시 17분에 전화를 해 주었다. 딱히 우리 관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 뒤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사이가 나빠지거나 싸운 것도 아니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우리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하지만 11시 17분에 오던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왜 전화를 안 하냐고 묻자니 작은 것에 집착하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괜스레 신경도 쓰였다. 지금이었다면 뭐냐고 이럴 거면 왜 해준다고 했냐고 가볍게 따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 연애에 서툴러 뭐든 게 조심스럽기만 하던 시절 탓인 것 같기도 하다. 뭐라 말도 못 하고 한동안 11시 17분이 되면 오늘은 전화가 오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에 괜스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11시 17분에 전화를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다. 그가 그런 제안을 하기 전까지는 원하지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호의였다. 하지만 괜히 뭔가를 가졌다가 빼앗긴 느낌이었다. 그것이 원래는 전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욱 화가 났다. 마음에 불필요한 결핍과 분노가 생겨났다.




회사에 입사한 뒤 같은 친목 그룹에 속한 동기가 있었다. 딱히 잘 맞는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인맥이 겹치다 보니 종종 둘이 밥도 같이 먹을 기회가 있었다. 동기는 살가운 타입이었다. 회사에서도 먼저 메신저로 말을 걸어주고 가끔은 둘만의 식사 자리도 먼저 제안하곤 했다. 새로운 사람과 잘 친해지지 않는 나와는 달리, 먼저 자주 연락을 해주는 동기가 고맙기도 했다. 하루는 동기가 소개팅을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평소에 소개팅을 잘 하지 않는다. 아예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라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누군가가 좋아지는 타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다보니 반 강제적으로 이미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만이 연인 풀에 겨우 들어오곤 했다. 내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적극적으로 세일즈를 하기 시작했다. 친한 대학 선배인데 페이스북에 동기가 올린 단체사진을 보고 나를 소개해달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다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거절하기도 뭐해서 알았다고 했다. 동기는 추진해보겠다고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남기며 사라졌다. 관심 없던 소개팅이었지만 막상 소개팅을 한다고 하니, 신경이 쓰였다. 한지 오래된 머리도 좀 다시 해야할 것 같고, 옷은 뭘 입어야 할지 고민이 됐다. 하지만 동기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대단한 것을 원한 게 아니었다. 소개팅을 해준다는 말을 들었으니 뭐 어떻게 됐다는 이야기가 있겠거니 하는 기대를 했다. 물론 그녀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가 나를 배려해서였을 수도 있겠다. 그쪽에서 다시 단체사진을 확대해봤더니 내 얼굴이 맘에 안 들었다거나 뭐 그 사이 누군가 만나는 사람이 생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상 대충 돌려서라도 이야기를 전해주면 산뜻하고 담백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아무 말이 없었다. ‘뭐 전화번호 전달했어’라는 경과의 안내라던지 ‘그 오빠가 바쁘대’라는 거절의 메시지를 주면 좋았지 않을까? 나는 괜히 혼자 또 설레었다가 풀이 죽어버렸다. 6개월쯤 뒤 그 동기는 또다시 소개팅을 제안했다. 지난번 제안한 소개팅은 완전히 잊은 눈치였다. 이번에는 소개팅에 대한 기대보다는 동기의 반응이 궁금해서 수락을 해보았다. 이번에도 상냥하게 ‘오케이 기다려.’라고 말하고 사라진 그녀는 역시나 소개팅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나는 조금씩 그녀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공수표에는 크게 세 종류쯤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허풍과 허언에서 발생된 공수표이다. ‘아 내가 잘 아는 형님이 그 분야 잘 아는데 내가 말 잘해놓을께.’라던지 ‘얼마 안하네. 나중에 하나 사야겠다.’ 라던지 하는 종류이다. 본인도 스스로 뱉어놓은 말을 수행하지 못할 것을 잘 알지만 내가 그 정도의 능력쯤은 가지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말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이런 유형은 ‘아는 형님’ 혹은 ‘아는 선배’가 많고 조만간 거창한 무엇인가를 계획 중이라고 선포하곤 한다. 하지만 우린 이미 그 계획이 실현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두 번째는 거절을 바라고 말하는 공수표이다. 이 공수표가 가장 껄끄럽다. 이러한 공수표는 그 실행이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보통 이는 상대에게 인정을 바라는 마음과 회피 성향이 잘 버무려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를 들면 연인 사이에 ‘내가 이따 데리러 갈까?’ 상냥한 제안을 생각해보자. 여기까지는 아무 이상이 없는 배려있는 제안이라 하겠다. 하지만 ‘응!’이라는 대답에 따른 화자의 반응에 따라 이 질문은 공수표로 가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아 근데 조금 피곤한 것 같아.’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따 일이 생길 것 같네.’로 본인의 제안을 즉시 철회하고 회피하는 케이스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공수표를 던져놓고 내심 상대방이 거절하기를 바란다. 문제는 상대방이 거절해주면서도 나의 제안에 고마워해 주기를 바라는 괘씸함이 섞여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수표의 문제는 일상의 대화와 절묘하게 섞여 당장은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가 모호해지는 것에 있다. 첫 번째 유형의 공수표는 차라리 낫다. 누가 봐도 그들을 겪다보면 저 사람은 허풍이 심하고 말에 과장이 묻어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거절을 바라는 공수표 유형은 다르다. 거절을 하지 않는 순간 내가 바로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다. 데리러 와 주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것만으로도 감동하진 못할망정 눈치 없이 ‘응!’이라고 대답해 버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세 번째는 공수표라고 하긴 그렇지만 단순히 기억력이 문제인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 자리의 대화를 채울 화젯거리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런저런 말들을 이리저리 던진 뒤 자리가 파하면 상쾌하게 만족한 얼굴로 일어난다. 본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에 대한 복기는 없다. 모임에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에 만족한다. 가장 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분이 덜 나쁘지는 않다.




살면서 은근히 기분 나쁜 공수표로 마음이 상한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이렇게 글을 적고 있자니, 먼저 생각난 저 둘 이외에도 나에게 소소한 화를 불러일으킨 공수표를 날린 이들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오른다. 회사에서는 1의 유형을 많이 당한 것 같고 친한 사람과의 관계에서의 공수표는 2와 3 유형이 섞여있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난무하는 공수표에 마음이 상해버렸다. 첫 연애를 함께한 그때 그 아이는 이제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가끔 시계를 봤을 때 11시 17분이라는 숫자가 떠있으면 나는 아직도 조그만 분노가 가슴속에 생겨난다. 회사 동기도 이제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소개팅 불발이 트리거까지는 아니었어도 그녀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변곡점 정도는 된 것 같다. 나는 상대가 나에게 굳이 무엇을 해주지 않아도 마음이 상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니 부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해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