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레시피.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친구도 없고, 요샌 많이 나온다는 부부동반도 아니고, 그 흔한 같은 길을 함께 하는 동행조차 없이
혼자 잘할 수 있다며 반쯤은 오기로 당당하게 뛰쳐나와서는 가지고 있던 전재산을 털리고,
내가 향한 곳은 '갈라파고스'였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이면서도 무언가에 쫓기듯,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
나의 불운이 이 섬까지는 쫓질 않길 바라면서.
나, 아니 우리는
한국에서 남미에 오기전부터 갈라파고스 일정을 함께 할 동행을 구해
여자 넷이서 에어비앤비를 구했었다.
이것은 여행 가기전 준비했던 그 어떤 것들보다도 제일 잘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운을 쫓아내기엔 내 기도는 부족했나보다.
나는 공항에 낙오되었다.
비행기 편이 다 달랐기에,
앞서 지수와 민경이는 한참이나 이른 아침 시간에 먼저 출발했기에 숙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보다 조금 앞선 비행시간이었던 화영이와 같이 숙소까지 향하기로 했다.
하지만,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다른 항공사였던 내가 먼저 출발하게 된다.
연착되었던 화영이의 비행기가 언제 출발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짧은 비행시간을 마치고 시골 버스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곳에 내려
혹시나 아는 얼굴이 있을까 두리번 거렸지만, 그럴리 만무했다.
갈라파고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그들만의 특색있는 입국 거북이 도장을 받기 위해,
입도비와 여권을 같이 내밀었다.
여권 한 가운데에 찍힌 거북이를 볼 여유조차 없이
가방에 쑤셔넣었다.
'와, 갈라파고스야!!' 하며 마냥 기뻐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근심가득한 표정으로 넋이 나가있으니
나를 보던 입국사무소 직원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 손을 툭 친다.
"최고의 여행을 할 수 있을거야"
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하하...나도 그러고 싶다...' 차마 말은 하지 못하고 홀로 삼키곤,
그것이 쓰기라도 한듯 씁쓸하게 웃어보이고 밖으로 나갔다.
저마다 일행을 찾아 떠나고, 픽업온 차량을 타고 떠나고,
나 홀로 떠나지 못하고 공항에 걸터앉아
전광판에 나타나있는 비행편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출발을 한건지, 연착이 된건지, 아니면 이미 출발해서 나보다 먼저 도착했었던 건지
여행 쩌리 중에서도 상쩌리었던 나는 전광판에 나와있는 안내조차 무슨 뜻인지 이해하질 못해 초조함만 더해질 뿐이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인터넷 하나 없음에
얼마나 작은 기계 하나에 의지했는지에 대한 무력함까지 들기 시작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아 가며 비행기가 온건지 아직 출발도 못한건지 물었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제대로된 답변을 주지 못했기에 내 불안감은 한껏 고조되어
진짜로 나를 버리고 간게 아닐까,
홀로 원망도 해보다가 집에 어떻게 찾아갈지 고민도 해보다
넋놓고 전광판만 들여다볼 뿐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서야,
게이트에서 나오는 화영이를 보는데 안도감에 왈칵 쏟아질것 같았던 감정을
애써 웃으며 억눌렀다.
하지만 시련은 결코 이 정도에서 끝나는 법이 없다고 하던가_
주소를 제대로 전달해주지 않은 호스트 덕분에 그쪽 동네를 죄다 뒤져야만 했다.
와이파이 되는 곳을 찾아 먼저 간 일행들에게 연락을 해보려고 시도했지만,
그것 조차 쉽지 않은 곳이 '갈라파고스'였다.
카톡 한 통에 최소 2-3분, 혹은 가지 않는 메세지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 곳.
지금은 좀 더 좋아졌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이 곳은 문명과는 거리를 둬야 하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도 이 곳에 있는 순간, 매 시간 그런건 중요하지 않을만큼 오래도록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상낙원'이라고 불리는지도 모르겠다.
호스트의 이름과, 집 이름을 가지고 동네 사람들에게 묻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마지막에 내리는 외국인에 대한 친절을 베풀어 준 버스 기사와 버스에 타고 있던 직원 덕분에
버스를 개인 택시마냥 동네 여기저기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러다, 다른 집을 에어비앤비로 착각해 불법주거침입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야.
불러도 대답없는 문을 한참이나 두드리다 열려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서 집을 보니,
아무래도 사진에서 봤던 방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놀라 여기가 아닌것 같다며
급하게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그러곤 한참을 서로 미친듯이 웃어재꼈다.
갈라파고스까지 와서 경찰서 구경할뻔 했다며, '여기야!' 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버스 직원에게 농담섞인 책망을 던졌다.
우리는 동네를 몇 바퀴를 더 돈 후에야, 겨우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다같이 조별과제라도 마친듯, 찾은 후의 환호보다는 찾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버스 기사와 버스 직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사이트에서 봤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안도감에 침대에 걸터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유난히 힘든 날의 하루는 참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