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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Me Feb 14. 2019

# 선의와 타의. 그 무엇이든 간에

세계여행레시피. 페루 마추픽추

인터넷, 그리고 또 주변에도 널리고 널린 마추픽추에 다녀온 썰들. 

나는 좋더라, 멋지더라, 환상적이더라 등의 뻔한 감상평보다 마추픽추의 원 안을 벗어난

그 주변의 이해안가는 몇 가지 일들이 더 기억에 남았다. 


아마 화가 났기 때문이었겠지. 




희뿌연 안개인지 구름인지 가득 차 보이지 않는 마추픽추 덕에 여러 사람들이 발목이 붙잡혔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비해 2박3일의 일정으로 여유를 잡고 이 곳에 왔기에 

나는 더할나위 없이 느긋했다. 


그런 나와 달리 그 곳에서 만난 몇몇 한국인들은 못보고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초조해 하고 있었다. 



"오후쯤 되면 걷히지 않을까요? 보통 오후에 많이 걷히던데.."

태연하게 오후를 말하는 나에게 이미 반즘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그들은 대답했다. 



"걸어서 다시 버스타러 가야 하는데 그럼 오후까지 못있어요"

"아...어떡해요.."

"뭐..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뒷 일정을 포기하더라도 보고가야죠" 

"아, 그럼 투어사에 얼른 연락해봐요!!" 

"뭐 알아서 어떻게 되겠죠"

"그래도.. 기다리지 않을까요?" 

"그냥 가겠죠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약속을 저버린 그들을 마추픽추를 끝내 보고는 흡족하다는 듯이 돌아갔다. 

물론 이미 약속되어있던 시간을 몇 시간이나 보낸 후에 지만.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그들이 했던 뭐 어떻게 되겠죠 라는 마인드를 가진 투어 그룹안에 

내가 끼었을 경우.

내가 겪게 될 불편함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들이 떠나고도 계속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관광객들 사이 사이를 지나쳐 내려왔다. 



마추픽추를 보고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마치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이라도 한 것 마냥 

무언가를 해낸 것만 같은 기분에 심취해 기분이 들떠있었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버스 타는 곳까지 늦지 않게 도착하기 위해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발걸음이 가벼운건 마음만 그렇게 느꼈는지 처음 도착할 때 당시보다 느린 속도 덕에 

약속한 시간을 지키지 못할까 마지막에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심한 고산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산 지역에서 달리기라니 

죽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겨우 10분 남짓 남겨놓고 약속 시간을 지켰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에서 30분이 지나서까지도 차는 출발하지 않았다.



"왜 안가??" 

나도 모르게 짜증 섞인 볼멘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직 사람들이 다 안와서 못 가" 

단오하게 이 말 한마디만 남기고는 우리 드라이버는 다른 드라이버들과 수다 떨러 사라져 찾을 수도 없었다.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옆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수 많은 투어 차량의 반 이상이 떠났는데도 

우리 차량의 몇몇 인원들은 올 생각을 않는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엊그제 연락 없이 약속시간을 저버린 사람들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이렇게 한 없이 기다리는건가..?' 



내가 이 나이 먹고 여기서 말의 중요성,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서 생각할 줄이야. 



"그 놈의 유심!!와이파이!!인터넷!! 타령들을 하면서 카톡으로 오늘 못간다고 말하는게 그렇게 어려워?!!"

결국 머리 끝까지 차오른 짜증이 터졌다. 


"하..그러게, 진짜 그냥 가지 좀 왜 기다리고 있는지 이해가 안돼"

항상 내가 짜증을 내도 그걸 이해 못하던 그도 덩달아 화가났다. 



벌써 1시간 반이 지났기에, 

그리고 우리는 야간 버스를 타고 볼리비아로 넘어가야 했기에, 

집도 없이 짐도 전부 투어사에 맡겨놨기에, 

정해진 시간내로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을 아무리 설명하고 애원 한들, 드라이버는 우리 얘기를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유심이 있으면 여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사지 않았던 내 자신이 원망스러워지게 까지 만들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무렇지 않게 와서는 시동을 건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오지 않았다.

더 이상 어떻게 할 생각도 들지 않아 그저 밖을 내다보며, 투어사를 생각하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앞에 사고가 나 길까지 막혀버렸다.



이제는 그저 허허 웃음만 나온다.



"망했다. 우리 어디서 자지?"

"아냐..어떻게든 되겠지"

같이 절망에 빠질 수 없으니 서로가 서로를 위로 하며, 그저 이 상황을 허탈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도착 예정 시간_ 00:00시'



쿠스코까지 돌아가는데 이 정도 시간이 걸린댔으니까.. 

이미 막차는 글렀고, 와이파이도 없는 도심 한복판에서 짐도 없이 숙소를 알아보러 다닐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그리고 드라이버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가 나서 늦어진다는 보고를 하는듯 했다. 


"파비앙이야??!!!!" 

큰 목소리로 냅다 묻는 나 때문에 드라이버는 한껏 놀라 눈을 꿈뻑 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와 전화할 수 있을까?"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드라이버를 위해 몸짓 까지 더해가며 말을 건낸 결과 전화를 건내 받았다. 



설움과 까맣게 타들어간 속이 융합해 큰 폭발을 일으킬 것만 같았지만 

꾸욱 한번 눌러내고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오늘 코파카바나에 가는 버스를 타야했어. 하지만, 몇 사람들이 안왔다는 이유로 

2시간이 넘어서야 출발했어.. 나는 왜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기다려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 

반쯤 울먹이는 원망섞인 말을 끝내자 그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그저 할뿐이었다. 

그리고 갈 수 있을거라는 희망적인 말과 함께. 


그리고 희망적인 그의 말과 대조되듯 쿠스코엔 비가 계속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이미 우리가 알던 코파카바나행 막차는 놓친지 한참이 지났기에

반쯤 포기한 상태로 쿠스코 시내에 들어섰다. 


차 문이 열리고 그 곳에 파비앙이 서있었다. 

대화를 할 틈도 없이, 그는 어서 짐을 챙기라는 말과 함께 재촉할 뿐이었다. 



사실 나는 그에게 화가 많이 나있었다. 

투어를 예약함에 있어 1박2일 투어로 근교와 마추픽추를 묶어서 가는 상품이 아니라 

오롯이 근교만 여유롭게 따로 둘러볼 수 있는 투어를 원했고 

1박2일 투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근교투어가 아님을 확인 받고 투어를 예약했다.


하지만, 7시에 출발이라던 투어 시간에 맞춰 왔으나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할 뿐 우리 투어 차량이 뭔지도 알 수가 없었다.


혹시나 버림받을까 전전긍긍해 하며 그의 뒤를 졸졸 쫓았지만, 

그는 투어비를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 말 한마디 걸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1시간을 밖에서 쩔쩔매며 기다려서 출발한 버스 차량은 내가 싫어했던 마추픽추 투어차량이었다.

근교투어를 짧게 하고 마추픽추로 향하는 그 팀과 어울려 근교를 보고, 

그들이 마추픽추로 향하고 난 뒤 어딘가 한 곳을 더 들리고는 투어는 끝이 나는 그런 투어. 



여유라곤 찾아보기 힘들었다.

모든 것이 마추픽추 팀에 맞춰져 있어 급하고 촉박하고 서둘러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들을 예상 못하지 않았었기에 근교를 따로 꾸려서 가는 투어를 원했던건데, 

이게 대체 뭐지 싶었었다. 

하물며, 마추픽추 투어를 나서서도 말했던 숙소와는 다른 컨디션의 숙소에 2시간 넘게 출발 지연된 투어차량 덕에 놓친 막차까지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왜 한국인들에게 제일 유명한 여행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짐을 가지러 달려간 투어사 계단 아래

파비앙의 부인인듯한 여자가 우리 짐을 꺼내놓고는 투어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짐을 하나씩 들춰메고는 절대 탈 수 없을 것 같은 티코에 구기고 구겨져 테트리스의 한 블럭 마냥 한 구석에 끼었다. 


정말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너무 꽉 끼어 그저 빨리 내리고 싶은 생각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따라오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파비앙 부부는 미친듯이 뛰어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표를 받아 들고서는 바꾸고 또 묻고 바꾸기를 반복해서

비록 직행이었던 버스가 차디찬 새벽 버스 터미널에서 2시간 대기후 환승 티켓으로 바꼈지만, 

그래도 그들이 위해주는 마음을 못느낄리 없었다. 



그제서야 화났던 감정보다 서서히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어쩌면 컴플레인으로 인한, 한국인들에게 안좋은 소문이 날지도 몰라서 라는 이유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마지막엔 심어주었고 

사람의 머릿 속엔 가장 인상 깊었던 모습만 남아있기 마련이기에 

이 때엔 다 풀리진 않았던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감에 있어, 그리고 기억을 기록함에 있어 

풀리고 흩어져 옅고 옅게 잔상으로만 남아 그를 좋게 기억하고 있다. 



아마 버스를 타지 못했더라도 그에게 화가 나진 않았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오히려 함께 와 준 것에 대한, 도와주려고 했던 그 마음자체에 오히려 미안함을 가졌을 것 같단 그런 생각. 


그렇게 그에게 한 가지를 배워간다.



그저 미안한다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그리고 행동보다도 마음으로 

그것이 선의던 타의던 간에 

누군가에겐 선으로 기억될 수 있음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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