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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tMe Jan 14. 2019

# 최악의 여행 신고식.

세계여행레시피. 에콰도르 바뇨스

잔뜩 지레 겁만 먹고 시작한 여행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위험하다는 '생각보다 괜찮더라'하는 안도감을 거머쥐고 나니 

아마 내 상식은 같이 뛰놀던 동네 개들에게 건네주었던 게 분명했다.



첫 여행지였던 키토에서의 순탄한 여행을 마치고 다음 도시로 이동하던 날. 

터미널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에 대한 걱정을 천진난만함으로 무장하고 배낭을 들쳐 메고 나섰다. 



친절했던 호스텔 직원의 [터미널 찾아가기]에 대한 열혈 강의를 청취하고는 

자신만만하게 올라 타 목적지에 도달함에 있어 꼭 벌써부터 '여행 마스터'가 된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나 여행이 소질인가' 

혼자 중얼대며 킥킥거리며 신나서는 터미널로 들어섰다.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는 터미널의 모습에 한국에 온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여러 버스 회사들이 붙어있는 이 곳에서 호갱님 한 명을 잡겠다고 

서로 나를 애타게 불러대는 모습에 금세 낯선 감정을 느낀다. 


버스 티켓을 한 장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자니 

누군가 옆에서 스윽- 내 티켓을 한번 훑는 시선이 느껴졌다.



"나랑 같은 버스네, 이쪽으로 가면 돼" 

꽤나 훤칠하고 멀끔하게 생긴 독일인이 었던 그가 내 티켓을 보며 말하며 걸어갔다. 

길쭉한 다리로 성큼성큼 이미 앞서가는 그를 종종걸음으로 짐을 짊어지곤 그를 쫓았다.

 


그는 혼자 여행하는 아시아 여자에게 큰 흥미를 보였으나, 

눈치껏 알아듣기의 달인이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코리안에게 금세 흥미를 잃었다. 



버스 좌석엔 번호가 적혀 있었고, 

내 자리 옆은 전통의상을 입고 나를 낯선 생명체를 본 것 마냥 쳐다보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앞 좌석들은 자리가 조금 좁고, 뒤쪽 좌석들은 조금 더 넓었기에 

좁아터진 좌석으로 낑겨들어가겠다고 들어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인상이 절로 찌그러졌다.



그리고 그때 아까 독일 청년이 나를 불렀다. 



"로하!! 이쪽으로 와. 이쪽에 앉아도 돼!!" 

이때 옮기지 말았어야 했다.



잘생기지도 않았었구만 왜 덥석 따라가서 앉았는지 원. 
혼자 덩그러니 떨어지니 같은 여행객이라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그가 반가웠기에 덥석 짐을 싸들고 가 그의 옆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직원이라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러고는, 내 귀중품이 들어있는 가방을 위에 선반에 올리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는 영어는 하지 못하고, 나는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고

정말 직원일지도 모른단 생각에 단호하게 쫓아내지 못하고, 

단호하게 No를 외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No!" 



싫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니 우선은 돌아가나 싶었는데 
다시 와서 볼케이노, 볼케이노 거리면서 뭐라고 얘길 하는데 
알아듣질 못하니 화산 때문에 흔들린다는 건가 하고 추측만 해볼 뿐이었다. 


어차피 쟤는 영어 못할 테니 독일 청년에게 

대놓고 쟤 직원 맞냐고 물어보니 

맞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안도했는지도 모른다.


사실 화산이랑 가방을 내가 메고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기가 차고 자다가도 이불 킥 할 것 같은

여행 중의 최악의 사건으로 꼽힌다. 


그렇게 이상한 놈이다 싶어 경계하다가 직원이 맞는 것 같단 소리에 
가방을 잠깐 올렸다가 

아. 그래도 뭔가 아니다 싶어서 다시 가져가니, 



그제야 어쩔 수 없단 표정으로 웃으면서 창가 쪽 의자 고리 쪽에 가방을 꽁꽁 엮어준다. 

창가 자리로 내가 앉아 가방은 내가 일어나지 않으면 닿을 수도 없게끔.  


내가 괜한 오해를 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괜스레 그에게 미안했다.
그제야 편하게 마음 놓고 
차창 밖을 구경하다 이내 잠이 들었다. 







에콰도르의 버스들은 중간중간 잘 서는데 
그렇게 몇 번 서다가 내 옆자리 독일 놈이 
(기억을 떠올리다 보니 어느덧 놈이 되어버렸다.) 

밥 사 먹는다고 밖으로 나가서는
버스가 조금씩 출발하려고 움직이고 있는데도 안 오길래 
이놈의 오지랖.

버스 앞쪽으로 뛰어가 기사에게 아직 안 탄 사람이 있다고 제스처를 취하고는 

그놈을 애타게 부르고는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약.. 2 분도채 걸리지 않은 시간이었다. 
굉장히 짧고도 짧은 시간 - 

그들에겐 남의 물건을 탐하기엔 충분한 시간. 
  


그렇게 시간이 지나 바뇨스에 도착했고 
미리 예약해둔 호스텔로 가서 먼저 선지불 하려는데,

현금 1700 달러가 들어있던 서류봉투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이송되고, 

내 시간만 그저 멈춰 흐르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온갖 생각이 다 들고 어디서 잃어버린 건지 어디까진 있었는지 
머릿속이 실타래로 엉켜버린 것 같았다. 



숙박비는 후지불이라는 안내를 받고는 

정신이 반이상은 나간 상태로 멍하니 방을 안내받았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도움을 청한다. 


호스텔 주인아주머니가 그나마 영어를 좀 알아들으셔서 
혹시나 키토 호스텔에서 내가 짐 싸면서 놓고 왔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키토 호스텔에 전화 좀 해 줄 수 있냐고 얼굴이 사색이 되어 도움을 요청했다. 


분실물을 물어봐달라고 
나 돈을 잃어버렸다고 눈물 한 방울이 그 끝에 맺혀 금방 이라도 흘러내릴듯한 얼굴로 
설명을 하자 피곤한 일을 떠맡기라도 한 듯 고개를 한번 젓고는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내가 금고에 맡겼었고 찾아갔다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넋이 나가 있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한 마디 건네주신다.



"너 여기 지낼 돈은 있니?.." 


 

나 자신에 대한 책망으로 대꾸할 기운도 없이 입술을 잘근 씹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다시 방으로 돌아오니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내가 가방에서 멀어진 건 독일 놈 부르러 갔을 때뿐인데 싶으면서 
문득 얼핏 전해 들은 가방 위로 올리라고 하면서 
가방에서 뭐 훔쳐간다던지 가방을 들고 튄다던지 
한다는 글을 봤던 기억이 이제야 나기 시작하는 건 뭐람. 


'아. 그 "삐리리"는 직원이 아녔네..'
'아.. 이 "독일삐릴리"을 믿는 게 아니었는데 
지도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이지. 이런 썅썅바같으니라고
. '



카페에서 숱하게 보고 듣던 사건을 알면서도 당하는 게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는지
그저 눈으로 한참을 쏟아냈다. 
그러고는 이내 털어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이미 내 손을 떠난 걸 어쩌겠으며

속앓이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 속만 썩어갈 뿐이다.'



같은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곱씹고 되뇌면서 맘을 추슬렀다.

그러면서도 나의 미련함과, 안일함에 솟구치는 짜증이 일렁였다. 



딱 30분만 울자며 타이머를 맞춰놓고는 

30분어치의 눈물을 10분 만에 쏟아내고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눈물에

어쩌면 실성한 듯 헛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나는

최악의 첫 여행 신고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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