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레시피. 페루 쿠스코
"컨펌 메일이 왜 안 오지?"
"무슨 영어로 뭐가 오긴 왔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아직 돈도 안 빠져나가서.. 불안한데.."
"에이~ 괜찮겠지."
마냥 괜찮을 거라고만 안일하게 생각했던 나 때문에 일은 결국 터져버렸다.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가는 길이 험란했기에, 비행기를 선택했었던 건 그리 좋은 초이스는 아닌 듯했다.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아침, 느닷없는 메일 한통이 날아왔다.
지지리 할 것 없던 리마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여행객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는지 그 많고 많은 버스들 조차 전부 만석으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와중에 예약 사이트 창은 연결이 되지 않고 헛돌기를 반복해 정신까지 피폐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돈이 빠져나간 후 비행기가 취소된 게 아니라 다행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이제 어쩌지 라는 걱정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별일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라는 의미는 꽤나 크게 다가왔기에
쿠스코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열리는 불꽃놀이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게 컸다.
한참을 서로의 노트북을 켜놓고, 예약 시도를 하다 리마에 있는 각 항공사를 찾아 나섰다.
"미안, 우리는 비싼 티켓밖에 남질 않아서.."
"여기서는 따로 티켓 발행을 하지 않아"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게 어때?"
"크리스마스라 티켓을 구하기 어려울 거야"
저마다 원하는 대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을 돌고 돌다 마지막에 들린 곳에선
심지어 한참을 기다려도 응대해줄 생각을 않았다.
"그냥 가자, 집에 가서 다시 한번 시도해보지 뭐. 여기도 똑같을 것 같아"
한숨 섞인 말로 돌아가자는 그에게 고집 아닌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여기가 마지막이잖아. 확실하게 여기까지 짚고 넘어가야 개운할 것 같아"
"이쪽으로 와. 뭐 때문에 왔니?"
멀리서 부르는 반가운 소리에 냅다 달려가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 제일 저렴한 가격은 이거야"
그녀가 내어준 가격은 우리가 예약하려던 티켓보다도 약간 저렴한 가격이었다.
"됐다!!!!!!!"
그녀는 느닷없이 환호성을 지르는 나를 보며, 누가 봐도 이 티켓을 살 것처럼 보였는지 항공권 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짝 꼬인 매듭이 풀렸다.
쿠스코의 공항은 조용했다.
그리고 쿠스코의 중심인 광장조차도 조용했다.
쿠스코에선, 밤 12시에 밤에 각 집집마다 폭죽을 터뜨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달려왔는데
잘못된 정보였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이 앞섰다.
'어....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뿜뿜하며 관광객들을 반길 쿠스코의 전경을 기대했지만
너무나도 평범한 풍경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그 불안감을 밖으로 차마 내뱉지 못하고, 그저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차피 왔어야 할 쿠스코였지만,
무리해서 달려온 것만큼 그 값어치에 대한 보상은 받고 싶은 욕심이었다.
"하아... 언제까지 기다리지?"
볼멘소리로 중얼중얼 거리며 눈을 부릅뜨고 12시 만을 바라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펑"
"팡"
"탕"
폭죽 소리라기보단 총성 소리에 가까운 소리에 놀라서 눈이 번쩍 떠졌다.
"시작된 건가?.."
한참이나 계속해 이어지는 폭죽 소리에 옥상으로 냅다 뛰어올라갔다.
말로 할 수 없는 장관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불꽃들이 일렁거리는 장관 앞에 그저 입을 떡 벌리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각 집집마다 작고 큰 불꽃들을 터뜨려대는 풍경은 생소하고도 설레어, 별들의 향연을 보는 듯했다.
그 모습에 푹 정신 놓고 보다 끝나갈 무렵 정신없이 담아낸 사진엔
실제의 1억만 분의 1도 안 담긴 사진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지만
그 감정만큼은 고스란히 기억 어딘가에 남았다.
누군가에겐 평범하고도 소소한,
누군가에겐 하나의 큰 의미로,
누군가에겐 일생 한번뿐인 선물을,
그리고 나에겐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대한 설렘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
쿠스코에서의 크리스마스이브는 빛 따라 잠들듯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