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행레시피. 남아공 케이프타운
처음으로 엉엉 울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새벽 내내 난리를 치고,
하다하다 비행기 티켓까지 검색해보는 지경까지 이르던 사건이 있었다.
사실 누군가에겐 진짜 별 일 아닌 일이겠지만,
나에겐 그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이었다.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깨끗하고 최신식 호스텔로 유명한 곳에 꽤나 시간을 머물렀다.
아침에 나갔다오면 이부자리가 정돈되어 있고 방안에 하나씩 있는 욕실 청소도 말끔히 되어있고
늘 오고가다 청소하시는 분들을 마주하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청소와는 별개의 문제로 이 곳은 여름이었다.
늘 좋은 날씨를 유지하기에 늘상 열려있는 창문덕이었을까.
개인등을 켜두고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하다 개인등 스위치를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더듬거려 끄고는 잠이 들었다.
깊이 잠들지 않았건지 무언가 이상한 느낌에 눈이 정말 번쩍 떠졌다.
'...뭐지?.. 분명 팔에 무언가 툭. 하고 떨어진 느낌이 났는데....'
이불은 자다가 발로 걷어찼는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나는 침대 끝자락으로 움츠리고 앉아 잘못 느낀거겠지 하고 나의 착각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텅빈 침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봤다.
정말 세상에 그렇게 빠른 바선생은 처음 봤을 정도로 너무 순식간에 휙- 하고 지나가서
내가 눈을 깜빡거리다 잘못본걸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다들 자고 있기에 차마 소리는 지르지 못하고 눈물보는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리고 침대에서 바로 뛰쳐나와 떨어져 있는 이불더미 속 더듬이와 마주쳤다.
확인사살이라도 하려했던 걸까
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는 상황에 우선은 로비로 내려가 스탭한테 말을 하려는데 말이 나오질 않는다.
"내 방에.. 바선생이.. 아니.. 내가 자는데 팔 위에 떨어져서..막..침대에 있는데.."
횡설수설하는 나를 보고는 이상하다는 듯 올려다 본다.
뭐가 그리 무서웠던건지 왈칵 터졌다.
"바선생이 내 침대에 있어........"
그리곤 어린아이마냥 서럽게 울어댔다.
그런 나를 보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휴식시간을 방해한게 짜증이라도 났는지 한껏 잔소리를 퍼부었다.
"여기는 아프리카고, 여기는 여름이야. 니가 왜 우는지 나는 이해가 안돼"
"아니..나도 알아. 너희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다 아는데!! 나는 걔가 무섭다고!!"
더 서럽게 쏟아대며 할말 다 하는 내가 기가 찬지 나중에 헛웃음을 보이는데 진짜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었다.
바선생을 잡으러 방에 스탭이 들어오면서 방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동시에 민폐를 끼치게 되었다는 점이 이 곳을 떠나고 싶었던 이유가 되기도 했지만,
그 방에 있던 미녀삼총사는 바선생을 찾는 스탭에게
"뭐..내 짐들 사이 어딘가에 있을걸..?"
시크하게 목격담을 전해주곤 신경쓰지 않고 자는 모습에 나는 더 비참해졌다.
나도 안무서워하고, 막 손바닥으로 때려잡고 그렇게 태어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귀신도 그렇게 무서워해서 공포물은 볼 엄두도 못내고, 액션 영화보면서도 수십번씩 화들짝 놀라는데
그래도 귀신과 바선생 중 둘중 하나를 고르자면 후자가 몇 만배는 무서웠다.
미국 티비쇼에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상금 거는 그런 프로가 있었던것 같은데,
아마 거기에서 바선생을 잡으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떨어지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나서 새벽4시 아무도 없는 불꺼진 로비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침대에서 자기가 무서웠기에 어두컴컴한 곳에서 전화를 걸어 한참이나 울어댔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울고 불고 했을까 싶긴 하면서도
지금 생각해도 무섭다.
"그게 자는데 내 몸에 뚝 떨어졌다니까?!! 하아..진짜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갈까?..그냥 아프리카는 건너뛸까?"
"다 짜증나아...나 아프리카 싫어"
"겪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니까?!"
"너는 안무서워하니까 나를 이해 못해"
그렇게 밤새 우는 나를 어르고 달래던 그도 함께 곤욕을 치뤘다.
"진짜 힘들면, 그때 가면 되잖아. 진정하고 그만울고"
그 말에 조금씩 진정을 되찾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날도 밝아오기 시작했다.
동행이었던 오빠가 내려와서 청소하시는 분이 이불 시트랑 싹다 갈아주고 갔다고 전해줬지만,
아직은 방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헛 포크질만 헤댈뿐이었다.
"헤이~ 너 괜찮아?"
새벽의 스탭과는 달리 작고 눈웃음이 서글서글한 남자스탭 하나가 장난스레 걱정된다는듯 다가왔다.
"응..뭐..괜찮아"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은데??"
"사실 안괜찮아. 하지만 걱정해줘서 고마워"
힘껏 웃어내보이자 힘내라는 듯 어깨를 두번 툭툭 치고 갔다.
그리고 나서도 그는 몇번이나 나를 마주칠 때마다 괜찮냐는 걱정도 해주고,
시간이 지나 제법 괜찮아진듯한 나를 보며 놀리기도 했다.
한국에서 부터 우려했던 일이었지만 이런식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방에서 나오기도 하고, 부엌에서 음식하다 마주치기도 하고, 길에서 밟히기도 했지만
살짝 흠칫할 뿐 이렇게 큰 요란을 떤 적은 없었다.
하지만 몸에 떨어진 것만은 나에게 꽤나 큰 충격이었기에
나의 남아공에서의 기억은 오로지 이 시간에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