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달래던 시간들.
인생 드라마로 등극했던 '눈이 부시게'는
나에게 청춘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니, 다시 한번 생각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저 좋았던 글 귀를 읽고는 작심삼일도 채 못 가 기억이 가물해짐과 같이
나의 기억은 또 다시 현실에 안주해가기 시작했고,
극장에 앉아 영화 한편을 감상하듯, 나의 시간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2015년 이었으니까.. 16..17.. 벌써 4년이네'
엄마의 기일이었다.
해외에 나가 있는 동안 두 해가 지나고 나서야 엄마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쑥스럼 많은 다 큰 첫째 딸은 하고 싶은 말을 이내 꾹 삼키고 속으로만 내뱉었다.
그럼에도 다 하지 못했던 말들에 대한 미안함을 작별인사에 담는다.
"다음에 또 올게"
늘 오는 곳이면서도 나는 납골당이 불편했다.
그 분위기와 공기가 숨이 막혀 나는 괜시리 다른 곳을 쳐다보고 시선을 피하곤 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엄마의 사진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면,
눈시울이 붉어져 옴에 차마 마주보지도 못하고 붙여놓은 작은 꽃다발 리본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엄마의 어릴 적을 생각해본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엄마의 어릴 적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고,
그저 날 때 부터 엄마였던 것 처럼 나에겐 그저 엄마란 당연한 존재였기에
사진 속의 그녀의 젊은 시절도 나에겐 그저 조금 젊은 엄마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내가 그녀의 나이를 쫓아 감에 깨닫는 것들이 있었다.
'알고싶지 않았다.'
그녀의 청춘이 그렇게 시들어감에 겪어야 할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알려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엄마는 행복했을까.
새해까지만 해도 내 기억속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였다.
다 큰 손녀에게 매번 마지막이라며 쥐어주시던 용돈이 진짜 마지막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었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
연세가 있으셨기에 종종 병원을 다니시긴 했지만
후에 곧 잘 완쾌하시고 늘 같은 자리 같은 모습으로 뵈었기에
나는 또 그럴거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병원이 싫었다.
지긋하리 만큼 다녔던 엄마의 병실에서 나던 냄새들이 싫었다.
살고자 하는 엄마의 가슴에 죽음이란 말을 쉽게 내 뱉는 의사들이 싫었다.
하루 이틀 지날 수록 쇠약해져만 가는게 병원에 있기 때문인 것만 같았다.
늦은 밤. 작은 TV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병실에서
아파서 울부짖는 엄마의 목소리는 더 크게만 울려퍼졌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는 그 곳에서
나는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던 곳에 또 다시 간다는건 꽤나 두려웠다.
"할아버지 저희 왔어요"
애써 밝게 인사를 건낸다.
그리고 고모의 한 마디에 이내 가슴이 미어진다.
"애들 왔네, 알아 보겠나"
기억이 과거와 허상과 현실을 오고가는 그 공간들 속에서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또 눌러내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럼에도 가려지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모습 속에서 엄마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엄마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아빠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아빠에게 한 없이 무뚝뚝하기만 한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의 심정을 이해해보려 애를 썼다.
힘들겠다는 표현으론 도저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무언가의 감정을 나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내를 보내고, 곧 아버지를 떠나 보내야 할 아빠가 가여웠다.
할아버지는 느닷없이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시기도 하다, 이내 엄마를 찾기도 하다
우리를 보시고 한참이나 우시기를 반복하셨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떼셨다.
"너그도 엄마 많이 보고싶제, 내도 보고싶다"
지금 말고, 나중에 조금 만 더 나중에 보러 가시라는 말을 목이 메어 끝내 뱉지 못했다.
인생의 윤회 속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시간들이라 생각하면 조금은 나을까
크게만 보였던 그 모습이 점차 작아지는 모습으로 변하는 시간들은 아직 낯설기만 하다.
그저 지금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랬다.
"할아버지 우리 얼른 집에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