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게 능력이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세상이 나를 시험하듯 몰아붙일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쓰러지지 않는 것. 비틀거려도 넘어지지 않는 것. 그러면 언젠가, 누군가는 알아줄 거라 생각했다. ‘와, 저 사람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는 날이 올 거라 믿었다. 버티면 길이 열릴 거라고, 버티면 기회가 올 거라고, 버티면 상처도 보상으로 바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울어도 울지 않은 척했고,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은 척했다. 그게 강한 거라고, 그게 성숙한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버틴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안에서 무너지는 건 더 깊고 조용했다. 버틴다는 건 때로 내 고통을 덮는 다른 이름이었고, 아무도 내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하는 방패였다. 사람들이 말하는 ‘대단하다’는 칭찬 속에는, 그들이 나의 아픔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숨어 있었다. 나를 칭찬하면서도, 동시에 외면하는 시선. 나는 그걸 모르고 고마워했던 걸까, 아니면 알면서도 받아들였던 걸까.
버티는 건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살 수 없었다. 버티는 건 상처를 늦출 뿐, 치유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도 믿었던 능력은, 사실 나를 조금씩 고립시키는 힘이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세상은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는다. 네가 알아서 버틸 줄 아니까, 굳이 돕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버팀은 나를 혼자 두는 기술이었고, 나는 그 속에서 서서히 마모되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게 아니라 견뎌내고 있었다. 견디는 하루는 무게가 다르다. 어떤 날은 1시간이 하루처럼 길었고, 어떤 날은 하루가 한 달처럼 버거웠다. 하지만 그 긴 시간을 버티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웃긴 건, 그 믿음이 나를 지탱한 동시에 나를 파괴했다는 사실이다. 좋은 날은 오지 않았고, 대신 나는 조금씩 나를 잃어갔다.
버틴다는 건 결국 기다림이었다. 그러나 기다림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마치 역의 의자에 앉아, 내가 타야 할 기차가 오길 바라는 것과 같았다. 기차가 올 수도,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전부였다.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내 몸은 뻣뻣해지고 마음은 무뎌진다. 나는 그런 나를 ‘성숙’이라고 불렀지만, 사실은 ‘무기력’에 가까웠다.
이제는 안다. 버틴다는 건 ‘나를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나를 갉아먹는 습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버티기만 하던 시절의 나는, 아무것도 놓지 않으려고 손을 꽉 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손 안에는 이미 부서진 조각들뿐이었다. 놓아도 되는 걸 놓지 못했고, 떠나도 되는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게 용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이제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 무작정 버티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나를 들여다보는 법을 배우고 싶다. 버티는 것도 필요하지만, 쉬는 것도 필요하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던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이미 충분히 강해졌다. 더 이상 나를 증명하기 위해 아프게 버티고 싶지 않다. 나를 위해 버티는 게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버티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나를 위해 쉰다. 나를 위해 울고, 나를 위해 웃는다. 그게 더 어려운 선택일지라도, 나는 그 길을 택한다. 버티는 게 능력이라 믿었던 시간들은 이제 끝이다. 그 시간들이 내게 남긴 건 상처와 함께, 나를 다시 세울 용기다. 그리고 나는 그 용기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