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할 단어가 하나도 없을 때

by 괜찮지않은사람

그날, 모든 문장이 칼처럼 느껴졌다. 누군가 건넨 말이든, 스스로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이든, 하나같이 날 위로하지 못했다. 위로가 되기는커녕, 더 깊은 상처를 긁어냈다. "힘내"라는 말은 내 상황을 모르는 가벼운 주문처럼 들렸고, "다 잘될 거야"라는 말은 근거 없는 낙관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나는 그 모든 말들 속에서 나만 더 작아졌다.

언젠가부터 위로는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해졌다. 진심보다 타이밍, 공감보다 예의가 먼저였다. 그런 말들이 내 곁에 남겨놓은 건 아무 의미도 없는 따뜻한 척이었다. 나는 그 가짜 따뜻함 속에서 더 춥게 식어갔다. 마음이 무너질 때 필요한 건 화려한 수사가 아니었다. 그냥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같은, 내 감정을 인정해주는 단순한 한 줄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들을 수 없을 때, 나는 혼자 나를 안아줘야 했다.

위로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고요한 공백이었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존재감 없이 지나갔고, 내 이야기는 금세 다른 주제로 덮였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를 위로할 단어가 세상에 없는 게 아니라, 그 단어를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아니, 애초에 관심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괜찮아" 대신 "괜찮지 않아도 돼"라고, "조금 쉬자"라고, "너 잘하고 있어"라고. 처음에는 그 말이 낯설고 억지 같았다. 하지만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내 안에서 아주 작은 안도감이 자라기 시작했다. 위로란 반드시 누군가에게서 받아야 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남의 입에서 나오는 위로보다, 내 안에서 내게 건네는 말이 더 단단하게 나를 지켰다.

물론 여전히 가끔은 바깥의 목소리를 기대한다. 아무리 스스로를 다독여도,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살고, 다른 사람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되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게 없다고 해서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내가 나를 먼저 위로하는 법을 배웠으니까.

혹시 지금, 나처럼 위로할 단어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세상에 너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달래줄 단어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안에는 이미 너를 살릴 말이 있다. 그 말을 찾아, 오늘 밤은 네가 너의 편이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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